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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복음]부활 제4주일 (요한 10,11-18)

부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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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생 때, 은경축을 맞이하는 신부님을 보면 너무나 멋져 보였습니다. 25년이라는 그렇게 긴 시간을 한결같은 모습으로 살아오신 신부님이 정말로 존경스러웠고 당연히 교회의 큰 어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20년째 사제 생활을 하는 지금의 제 모습을 보면서 ‘과연 멋진 사제로 살고 있는가’라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5년 뒤에는 은경축을 맞이했던 그 과거의 신부님과 같은 모습을 갖출 수가 있을까요?

솔직히 나이 마흔이 되면 멋진 중년이 될 줄 알았습니다. 논어에서 40세를 불혹이라고 해서 어떤 유혹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즉 판단에 혼란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너무나 쉽게 흔들리고 어떻게 할지 몰라서 방황했던 30대에 제게 마흔은 인생의 정점을 찍는 시기가 될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마흔을 넘어서 이제 하늘이 정해준 명을 안다는 지천명인 오십을 바로 코앞에 두고 있습니다. 여전히 판단에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데 벌써 오십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네요.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는 우리입니다. 그런데도 자기 생각을 얼마나 많이 내세우고 있습니까?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억지도 얼마나 많이 부리고 있습니까? 사실 이렇게 억지 부리며 생떼를 쓰는 모습을 사람들은 좋게 보지 않습니다. 아마 멋진 중년의 모습이 아니라 ‘정신이 어떻게 된 것 아냐?’ 하면서 피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해마다 맞이하는 ‘성소 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이라고 부르는 성소(聖召)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주님의 뜻을 행하는 성직자나 수도자가 되는 부르심도, 또한 가정을 이루면서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결혼 성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부르심에 응답하여 생활하기가 어떻습니까? 참으로 어렵습니다.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억지를 부리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낮추는 큰 겸손의 삶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자신을 봉헌하는 ‘성소’를 받았습니다. 즉, 성소는 겸손을 통해서만 진정으로 주님의 뜻에 맞게 실현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 모든 부르심을 존중하고 있지만, 오늘 특별히 사제, 수도자, 선교사 성소의 증진을 위해 기도를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주님께서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 9,37-38)고 말씀하셨음을 기억하면서, 성소 계발과 육성을 위해 누구도 예외 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의 큰 모범을 통해서 주님을 믿게 되었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종종 봅니다. 이는 곧 신앙생활의 단맛을 느낄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주님의 일꾼이 당연히 필요하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지금 현재,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에 대한 지대한 관심으로 인해 성소자의 수가 급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교회 안에서 일할 일꾼들이 줄어들면서 교회를 찾는 신자들의 숫자 역시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착한 목자의 모습으로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까지 내놓으신 주님이십니다.(요한 10,11 참조)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자신을 봉헌하신 것이지요. 이는 곧 당신의 모습을 보고 따르라고 본을 보여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세상의 것이 좋다면서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성소 계발과 육성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사는 것은 아닐까요?

베드로 사도는 주님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다(사도 4,12 참조)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왜 주님의 우리 밖에서만 머무르려고 할까요? 이제는 주님을 있는 그대로 뵐 수 있도록(1요한 3,2 참조) 노력해야 합니다. 이는 주님의 부르심에 겸손한 모습으로 제대로 응답하는 것,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도록 도움과 힘을 실어 주는 것 등을 통해 가능하게 됩니다.

또다시 맞이하는 성소 주일입니다. 단순히 신학교나 수도원을 방문하는 특별한 날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성소에 대한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고 적극적으로 주님 뜻에 따를 수 있는 마음을 갖는 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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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8-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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