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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87) 18세기 ④ - 개신교 경건주의에 직면한 독일 가톨릭 영성

‘개인주의적 신앙’에 영성생활 지침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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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스트팔렌 조약의 비준을 담은 그림. 1648년 10월 24일 맺어진 조약으로 유럽 전역은 평화를 맞았고 독일은 종교의 자유를 누리는 나라가 됐다. 하지만 개인적 신심을 지나치게 강조한 개신교의 경건주의는 독일 가톨릭 영성에 악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16세기 종교개혁주의자들의 개혁 운동은 가톨릭교회가 신자들에게 올바른 영성생활을 가르쳐 주기는커녕 오히려 잘못된 신심을 조장한다고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17~18세기 개신교는 자신들의 근본주의에 매몰돼 교회 운영 방식과 교리에 대한 논쟁의 양상을 보이거나, 사변 신학에 무관심하면서 개인주의적이고 체계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특히 독일에서 성경 말씀을 엄격하게 준수하려고 했던 개신교가 유연성을 잃고 경직됐을 때, 가톨릭교회는 성경 연구를 비판하고 수용하면서 신비체험과 신비신학을 통해 신자들에게 영성생활의 본보기를 제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역사 비평적 성경 연구 방법론의 출현

17세기 프랑스에서 많은 영성가와 영성작가들이 이단 사조에 대항하면서 올바른 영성생활을 가르치고자 노력했지만 외적으로 보기에 신자들의 영성생활뿐 아니라, 믿음에까지 혼란을 가져올 것만 같았던 시도도 있었습니다. 성경 비평가인 프랑스 오라토리오회 소속 리샤르 시몽(Richard Simon, 1638~1712)은 1678년에 저서 「구약성경의 비판적 역사(Histoire critique du Vieux Testament)」에서 모세오경의 저자가 모세라고 널리 알려진 내용을 비판했습니다. 보쉬에(Jacques-Bnigne Bossuet, 1627~1704) 주교는 즉시 시몽의 주장에 반대하며 금서 처분을 이끌어냈습니다.

하지만 시몽의 주장은 세속 학자들에게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의대 교수였던 장 아스트뤽(Jean Astruc, 1684~1766)은 1753년에 익명으로 출판한 저서 「모세가 창세기를 쓰는 데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원본 문헌에 대한 추측(Conjectures sur les mmoires originauz dont il paroit que Moyse s’est servi pour composer le livre de la Gense)」에서 저자가 최대 11개의 원전 자료들을 사용해 창세기를 썼는데, 원전 자료들이 연대순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섞여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처음에 비판적인 성경 연구는 가톨릭교회에서뿐만 아니라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를 주장했던 개신교에서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스트뤽의 주장은 18세기에 들어서 프랑스보다 독일에서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독일 개신교 경건주의와 영국 감리교의 출현

종교개혁 이후에 주로 교리 논쟁에 치우친 결과로 영성생활이 메말랐다고 생각한 개신교는 17세기 루터교를 중심으로 생활 쇄신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독일 루터교 신학자였던 필립 슈페너(Philipp Jakob Spener, 1635~1705)는 1675년 저서 「경건한 욕망(Pia Desideria)」에서 신앙인이 영적 쇄신을 통해 개인적으로 변화되는 방법을 강조하면서 개별적인 신심과 경건함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특히 슈페너는 저서에서 6개 항목의 생활 개선 방안을 제안했습니다. 즉, 평신도 신앙인들은 성경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하고 교회 활동에 더 참여해야 하며, 신앙을 실천해야 하고 논쟁보다는 겸손과 사랑으로 토론해야 하며, 종교 지도자는 학식뿐만 아니라 경건함도 지녀야 하고 일반 신앙인의 신앙을 발전시킬 설교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경건주의(Pietism)’의 아버지로 불렸던 슈페너는 개별 신앙인들이 경건해질 때에, 교회도 긍정적으로 쇄신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18세기 절정기를 맞은 경건주의는 개신교 신앙인의 신앙 부흥과 영성생활을 위해 개별적으로 엄격한 윤리 도덕과 경건함을 겸비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결국, 경건주의는 개인 신심의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유럽 본토 개신교의 경건주의는 18세기에 영국에서 새로운 종교 부흥 운동이 일어나는 데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교리 논쟁이나 신심생활에 흥미를 잃어버린 영국 성공회에 실망한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와 동생 찰스 웨슬리(Charles Wesley, 1707~1788)는 1729년에 ‘신성회(Holy Club)’를 설립하고 박애주의와 경건주의를 실천했습니다. 성공회 사제였던 존 웨슬리는 1738년 특별한 종교 체험을 한 후에 신앙인들에게 생기 있는 실천적인 신앙심을 불러일으키고자 순회 설교를 시작했으며, 많은 사람이 그의 가르침과 성품에 매력을 느끼고 모여들었습니다. 존 웨슬리를 추종하던 사람 중 일부는 미국으로 이주해 1768년 그곳에서 ‘감리교(Methodist)’를 설립했으며, 영국에서도 1795년 영국 감리교가 성공회로부터 독립했습니다. 존 웨슬리의 가르침에 따르면, 감리교는 개인의 신앙 체험을 중요하게 여기고 애덕 실천을 강조했으며, 하느님의 구원 은총도 개인적인 체험에서 접근했습니다. 또한 신앙인들이 사랑의 완전을 추구하는 것을 강조하면서 사회복지 사업에 관심을 가졌고, 종교개혁주의자들이 주장한 복음주의를 따랐습니다. 물론 존 웨슬리는 평생 성공회를 떠나지 않았고 성공회 사제로서 자의식도 분명했지만, 그의 가르침을 따르던 사람들이 새로운 종교 조직을 만드는 것을 반대하지도 않았습니다.

독일 가톨릭 영성에 악영향을 끼친 경건주의의 개인 신심

독일 지역은 17세기에 발발했던 30년 전쟁(1618~1648) 때문에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30년 전쟁은 초기 신성 로마 제국을 중심으로 한 가톨릭교회를 지지하는 나라들과 개신교를 지지하는 나라들 사이에서 벌어진 종교적인 요소가 담긴 전쟁이었는데, 점점 각 나라가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독일과 프랑스의 대결 구도 속에서 정치적인 전쟁이 됐습니다. 1648년 체결된 베스트팔렌 조약(Westflischer Friede)으로 30년 전쟁은 끝났으며, 유럽 전역은 평화를 맞았습니다. 18세기 독일은 평화조약 덕분에 평민들이 제후의 종교를 따르지 않고 자신의 종교를 가질 수 있는 종교 자유를 누리는 나라가 됐으나, 개신교 교세가 강한 북쪽 지역의 백성들은 부유하고 가톨릭 교세가 강한 남쪽 지역 백성들은 빈곤하게 됐습니다.

따라서 독일 가톨릭교회는 빈곤한 남쪽 지역 신자들에게 신앙 강화를 위한 신앙교육과 영성생활을 시급히 보급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독일 지역 개신교의 경건주의는 신심생활을 지나치게 개인화시킴으로써 가톨릭 신자들에게도 수덕생활과 신비생활을 개인적인 신심의 관점에서 다가가는 오류를 범하게 할 가능성을 높였습니다. 더군다나 18세기 후반에 나타난 낭만주의는 가톨릭교회를 동방 지역 및 동양의 종교들과 유사하게 여기면서 일반인들에게 가톨릭 신앙을 미신 행위의 일종으로 느끼게 했습니다.

독일 프란치스코회 소속 멜키오레 베버(Melchiore Weber)는 1714년에 저서 「하느님 말씀의 칼로 자른 경건주의자들의 종파(Secta Pietistarum Dissecta Gladio Verbi Dei)」에서 경건주의를 강력하게 반대했습니다. 또한, 독일 폴링(Polling)의 의전 수도회 소속이었던 신학자 에우세비우스 아모르트(Eusebius Amort, 1692~1775)는 1744년에 저서 「사적 계시, 환시 및 발현에 대한 모든 규범들(De Revelationibus, Visionibus et Apparationibus Privatis Regulæ Tutæ)」에서 경건주의 때문에 혼란을 초래한 신비체험에 대해 종합적이면서도 엄격한 규범을 제시했습니다. 결국, 이러한 시도들은 이후에 독일에서 신비신학자와 신비체험가가 출현해 경건주의의 영향으로 자칫 흔들릴 수 있었던 독일 가톨릭 영성의 중심을 잡아주는 출발점이 됐습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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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8-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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