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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96) 19세기 ⑥ - 데레사와 엘리사벳의 영성

기도와 애덕의 삶으로 ‘신비체험’ 재조명한 성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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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에 생겨난 정적주의 이단 사상 때문에 서방 가톨릭교회는 한동안 오해 소지가 있는 신비생활을 언급하거나 신비신학 연구를 자제했습니다. 하지만 19세기 말엽 등장한 신비체험가 두 명이 끼친 영향 덕분에 그리스도인들은 다시 한 번 신비생활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서방 가톨릭교회도 신비신학 연구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습니다.

▲ 아기 예수의 소화 데레사.

▲ 소화 데레사의 어머니 마리 젤리 게랭과 아버지 루이 마르탱.



아기 예수의 소화 데레사

프랑스 알랑송(Alenon) 출신인 리지외의 데레사(Thrse de Lisieux, 1873~1897)의 아버지 루이 마르탱(Louis Martin, 1823~1894)과 어머니 마리 젤리 게랭(Marie-Zlie Gurin, 1831~1877)은 의전 수도회에 입회해 봉헌생활을 살고 싶었던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기에 결혼 후에도 한동안 동정을 지키다가 고해 사제의 훈계를 듣고 9남매를 낳았습니다. 신심이 깊었던 이 부부는 2015년 함께 성인품에 오르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4살 때 어머니를 여의게 된 데레사는 둘째 언니 마리 폴린(Marie Pauline, 1861~1951)을 어머니처럼 여겼는데, 4년 후인 1881년 폴린은 리지외(Lisieux) 가르멜 수녀원에 ‘예수의 아녜스’라는 수도명으로 입회했습니다. 10살 때에 경련을 일으키는 중병에 시달렸던 데레사는 성모상이 미소 짓는 듯한 환시를 본 후 완쾌했으며, 11살 때 첫영성체와 견진성사를 받았습니다. 데레사는 1886년 성탄 전야 미사 후 ‘완전한 회심’을 통해 은총을 체험하고 그리스도와 이웃 사랑의 소명을 느껴 이듬해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하고 싶다는 염원을 밝혔으나 어리다는 이유로 거절당했습니다.

1887년 11월 데레사는 일곱째 언니 마리 셀린(Marie Cline, 1869~1959)과 함께 로마로 성지순례를 가서 교황 레오 13세(Leo PP. XIII, 재임 1878~1903)를 알현하고 나이 제한에 대한 관면을 청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데레사는 1888년 15살에 가르멜 수녀원에 ‘예수 아기와 성안(聖顔)의 데레사’라는 수도명으로 입회했습니다. 1895년 데레사는 원장 수녀의 명으로 자서전을 썼으며, 1896년 성목요일 처음으로 각혈하고 이듬해 병세가 악화돼 1897년 9월 30일 폐결핵으로 사망했습니다.



작은 길을 걸으며 애덕 실천에 전념한 데레사

데레사의 친언니였던 예수의 아녜스 원장은 1898년 총 3부로 구성된 데레사의 자서전, 「영혼의 이야기(Histoire d’une me)」를 출간했는데, 짧은 기간 많은 사람이 읽고 감명을 받았습니다. 데레사는 예수의 아녜스 원장에게 헌정한 첫 번째 자서전에서 자신의 영성 사상에 대해서 평소에 적었던 편지글을 모았습니다. 특히 첫 번째 자서전에 ‘작은 흰 꽃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적혀 있던 것을 계기로 데레사는 ‘소화(小花)’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 자서전은 성심의 마리아 수녀에게, 그리고 세 번째 자서전은 공자그의 마리아(Marie de Gonzague, 1834~1904) 원장에게 헌정됐는데, 이 역시 편지글 형식으로 구성됐습니다.

데레사는 자서전에서 ‘작은 길’이라는 영성을 강조했습니다. 즉, 자신은 보잘것없고 무기력하지만, 그 점을 인식하면 오히려 하느님을 굳게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작은 길은 ‘영적인 어린이의 길’과 같은데 아버지가 항상 자녀를 사랑하기에 어린이는 아버지를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거룩함에 관심을 가졌던 데레사는 특별한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도 거룩함을 이룰 수 있으므로, 하느님의 부르심에 흔쾌히 응답하라고 강조했습니다. 소수의 선택된 영혼만이 신비체험을 하거나 대단한 일을 실현하면서 거룩해질 수 있다는 생각은 편견이며, 작은 길을 걷는 사람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말고 구원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데레사는 수녀원에 입회하기 전,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던 중 ‘사랑의 열’을 체험하면서 애덕을 실천하는 길이 자신의 성소임을 깨달았습니다. 즉, 자신은 하느님을 사랑해야만 하고 사랑으로 하느님과 일치할 수 있으며, 이웃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도 부드러운 자비심으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느님의 자비심을 신뢰하는 것은 작은 길의 영성을 실천하는 또 다른 방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 삼위일체의 엘리사벳.



고독 속에 내재하시는 삼위일체 하느님과 일치했던 엘리사벳

삼위일체의 엘리사벳(lisabeth de la Trinit, 1880~1906)은 아버지가 군인이었기 때문에 프랑스 셰르(Cher) 주 아보르(Avord) 군부대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대 경당에서 세례를 받고 유년기를 보낸 엘리사벳은 갑자기 아버지가 사망하자 가족과 함께 디종(Dijon)으로 옮겼습니다. 어린 시절 엘리사벳은 성격이 괴팍했으나, 1891년 첫영성체를 한 후부터 하느님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자신을 제어하기 시작했습니다.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을 만난 엘리사벳은 회심을 할 수 있었습니다. 1894년 엘리사벳은 기도 중에 주님의 부르심을 느끼고 자신의 생애를 주님께 봉헌하기로 했습니다. 엘리사벳은 어머니의 권고에 따라 싫어하는 기색 없이 세속의 사교 모임에 나가기도 했지만, 본당에서 어린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성가대에서 노래하고 봉사 활동에 헌신하는 걸 즐겼습니다.

1899년 피정에 참여한 엘리사벳은 아빌라의 데레사(Teresa de vila, 1515~1582)의 저서 「완덕의 길(Camino de Perfeccin)」을 읽으면서 그동안 자신의 성격을 극복하는 영적 투쟁을 하느님의 은총 속에서 오랫동안 실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는 신비체험을 했습니다. 마침내 엘리사벳은 디종에서 1901년 본인이 열망했던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해 ‘삼위일체의 엘리사벳’이라는 수도명을 받았습니다. 엘리사벳은 이미 입회 때부터 침묵 속에 끊임없이 기도하며 사랑으로 하느님과 일치하는 영성생활을 추구했으며, 지원기 시절 주님의 위로를 받았고, 수련기 시절에 정화의 과정을 겪으면서 첫 서원 땐 깊은 영성생활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1904년에 엘리사벳은 하느님 은총의 도움으로 삼위일체께 바치는 기도 「오 나의 하느님, 흠숭하올 삼위일체시여( mon Dieu, Trinit que j‘adore)」를 썼습니다. 1906년 사순절, 엘리사벳은 사도 바오로 서간을 읽다가 “나는 죽음을 겪으시는 그분을 닮아”(필리 3,10)가고 싶다고 생각했으며, 이미 중병을 앓고 있던 터라 자신의 삶의 끝을 받아들이면서 기뻐했습니다. 1906년 11월 엘리사벳은 짧은 생과 수도생활을 마쳤습니다. 제르맹(Germaine) 원장은 1909년 엘리사벳의 자서전 「회고록(Souvenirs)」을 출간했습니다.

엘리사벳의 영성생활은 침묵에서 시작해 자신 안에 내재하시는 삼위일체 하느님을 만나러 가는 여정이었습니다. 특히 생에 말기에 엘리사벳은 하느님의 영광만을 바라보고 ‘영광의 찬미(Laudem Gloriae)’를 언급하면서 내적 생활을 더욱 단순화했습니다. 또한, 엘리사벳은 성모 신심에도 자신을 봉헌하고 헌신적으로 실천했습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약 25년밖에 살지 못했던 두 성녀는 수도원 안에서만 살았던 짧은 인생이었지만, 하느님과 함께하는 신비체험 속에서 세상 모든 사람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후 많은 그리스도인은 두 성녀의 삶에 큰 관심을 보였고, 오해 속에서 주목받지 못하던 신비생활과 신비신학도 서방 가톨릭교회에서 다시 한 번 올바르게 자리 잡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8-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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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토빗은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눈을 뜨게 해 주셨다는 사실을 그들 앞에서 밝혔다. 이어서 자기 아들 토비야의 아내인 사라에게 다가가 그를 축복하며 말하였다. “얘야, 잘 왔다. 얘야, 너를 우리에게 인도하여 주신 너의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빈다. 너의 아버지께서 복을 받으시고 내 아들 토비야도 복을 받고, 그리고 얘야, 너도 복을 받기를 빈다. 축복 속에 기뻐하며 네 집으로 어서 들어가거라. 얘야, 들어가거라.” 그날 니네베에 사는 유다인들도 모두 기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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