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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6주일 -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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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민택 신부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수많은 사람이 그분께 모여들었습니다. 모두 그분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주었기 때문입니다.(루카 6,17-19)

이 어수선한 상황에서 예수님은 차분하게 눈을 들어 제자들을 바라보시며 ‘말씀’을 건네십니다. 하느님 나라를 맞이하기 위해 군중에게 필요했던 것은, 그분의 힘을 통한 즉각적인 치유보다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라고 판단하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참 행복 선언’은 보통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군중이 좇아가는 길의 정반대 편에서 행복을 찾으라고 합니다. 가난, 굶주림, 슬픔, 미움과 추방, 모욕과 중상… 그보다 더한 불행 중에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행복을 찾기 위해 바로 그곳으로, 곧 사람들이 가장 행복과 멀리 있다고 여기는 곳으로 우리의 눈길을 돌리라고 합니다. 구체적인 삶의 현실에서 출발하여 하느님 나라로 나아가는 길을 찾으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교육 방법은 조개가 긴 시간에 걸쳐 진주를 만들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단 한 번에 진주로 변하기를 바라지 않으십니다. 신앙은 마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서기를, 스스로 길을 걷기를, 시련을 헤쳐가기를 바라십니다.

하느님 나라는 마술과 같이 주어지는 환상의 나라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변화와 성장, 인격의 완성과 관계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사랑과 자유를 찾는 과정에서 더 개방된 존재로 성장하기를, 시련을 통해 성장하기를 바라십니다. 시련이 없는 탄탄대로를 걷기보다 시련 속에서 견디고 버티며 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로써 그분과의 우정이 돈독해지기를, 신뢰가 더욱 굳어지기를, 우리의 인격이 그분을 닮아 겸손해지고 온유해지기를 바라십니다.

시간 안에서 우리의 변화를 통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구원이 아닌 마술이나 눈속임일 것입니다. 동전을 넣기만 하면 음료를 제공하는 자판기처럼, 사람들은 즉각적인 답을 바랍니다. 바로 주어지는 행복을 찾습니다. 그러나 마술처럼 주어지는 행복이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의 경험이 말해줍니다. 하루아침에 부자가 된 사람의 말로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성장할 시간, 변화할 시간, 자신을 깎고 뛰어넘을 시간 말입니다.

예수님의 참 행복 선언은 책임 없는 말장난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지만, 사실은 삶의 근본적인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사람은 시련 속에서만 성장한다는 것, 바로 그곳을 관통해야만 자기를 깨뜨릴 수 있으며, 자신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진리입니다. 하느님 나라가 우리의 인격이 예수님을 만나 맛좋고 향 좋은 포도주로 익어가는 과정이라면, 삶에서 겪는 시련은 우리가 잘 ‘익어가도록’ 하는 ‘효소’일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찾는 행복은 진정한 행복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 행복은 가장 행복이 없을 것만 같은 우리 삶 안에 감추어져 있다고 예수님의 참 행복 선언은 말합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지금 어디서 행복을 찾고 있느냐고.



한민택 신부(수원가톨릭대 교수, 이성과신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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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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