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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영성 나는 평신도다] (18)한국 교회 평신도 사도직의 현주소 6 : 신앙을 통해 현실 안에서 세속적 가치 극복하기(중)

복음화, 우리 사회를 아름답게 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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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이들이 삶을 전쟁터로 본다. 하지만 평신도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전쟁터가 아니라 하느님의 섭리가 넘쳐나는 아름다운 곳이고, 그렇게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제서품식에서 기도하는 신자들. 가톨릭평화신문 DB

▲ 정치우 교장



우리의 일상은 고통의 연속입니다. 우리는 두통, 치통, 감기, 남편 또는 아내의 나쁜 성향, 찌푸린 얼굴을 가진 사람들과의 만남, 잃어버린 휴대전화기 때문에 힘들어합니다. 평신도로서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정말 힘든 일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불편함이 사랑으로 표현되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아기를 위한 어머니의 희생은 불편함이 아닙니다. 아기 때문에 아무리 힘들어도 그것은 고통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불편함을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것에서 인간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동물의 새끼 사랑은 본능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자녀 사랑은 본능적인 것에 더해 위대한 사랑의 힘이 깃들어 있습니다.



사랑 위해선 불편함 감수해야

이 사랑을 위해서는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합니다. 세속적으로 돈을 많이 벌려고 해도 우리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합니다. 세속의 부자가 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새벽에 좀 더 일찍 일어나야 합니다. 장사하기 위해,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학교에 가기 위해 일찍 일어나야 합니다.

영적인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금 더 많이 움직여야 합니다. 부지런해져야 합니다. 그래서 평일 미사에 참여하고, 각종 단체에 가입해 활동도 해야 하고, 어려운 이웃도 도와야 합니다. 이러한 불편함이 싫다면? 육신과 정신과 영이 서서히 죽어갑니다. 동물은 싫은 것을 하지 않습니다. 불편함을 이겨나갈 때 영적인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현재 한국 천주교회의 가장 큰 과제는 ‘영성화’ 그리고 ‘복음화’라고 생각합니다. 정신적으로 똑똑한 사람은 많습니다. 그런데 영적으로는 똑똑한 사람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영의 깊은 차원, 영의 핵심까지 들어간 평신도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물론 8살 먹은 아이가 천재의 재능을 발휘해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이제 막 영적 초보 단계를 걸어가는 이에게 깊은 영적인 차원을 느끼라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각자 신앙인의 처지에 맞게 하느님을 만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8살 꼬마는 그 나이에 맞게, 20대 청년은 그 나이에 맞게, 70대 노인은 그 나이에 맞게 하느님을 만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이렇게 하느님을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모든 피조물 안에서 계시지만 동시에 무한히 그것을 초월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1, 2, 3, 4, 5차원으로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라 무한대의 차원으로 존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느님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배 속의 태아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하지만 신비로운 방법으로 어머니의 사랑을 체험합니다. 외국으로 떠난 자녀가 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거리상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 자녀에 대한 생각은 거리와 관계없이 지금 여기서 매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일반적인 인간적 방식을 조금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인간적 방식이란 육신적이고 정신적인 방식을 말합니다. 정신에 의존하는 기억, 지식, 벗어나지 못하는 죄의식, 편견, 이기주의, 야망, 욕심을 비우면 비울수록 하느님을 바라보는 통찰력은 더욱 명확해집니다. 이를 가로막는 것이 우리들의 일상 생활방식입니다.



세상은 전쟁터가 아냐

안타까운 점은 아직도 많은 이들이 삶을 전쟁터로 본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전쟁터로 보니까 진짜 우리 삶이 전쟁터가 되는 것입니다. 전쟁터에서 승리해 교사가 된 사람이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치겠습니까. 전쟁터에서 승리해 판사가 된 사람이 어떤 판결을 내리겠습니까. 전쟁터에서 승리해 돈을 많이 번 사장님이 어떻게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겠습니까.

평신도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은 전쟁터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섭리가 넘쳐나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하느님의 은혜를 느끼며 살아가는 평신도, 그런 평신도가 복음화시키는 세상. 바로 제가 꿈꾸는 하느님 나라입니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복 받은 평신도들이 됩시다.



정치우(안드레아, 새천년복음화학교 교장)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9-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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