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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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은수녀의 살다보면] (61)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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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을 잃고 아들과 단둘이 낯선 타향에서 새로운 둥지를 튼 여인. 그녀는 허영심으로 가련하고 고달픈 자신의 처지를 애써 달래며 살아간다. 게다가 운명의 장난 같이 닥쳐온 연이은 불행의 풍파. 어린 아들이 납치돼 결국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하늘이 무너지고 억장이 무너지는 충격적인 이 현실, 그래도 여인은 살아야만 했다. 누군가의 권유로 알게 된 하느님, 어쩌면 이 여인에게 하느님은 유일한 비상구였으리라. 최면에 걸린 듯 살인범을 용서할 마음으로 교도소를 찾아간다. 그런데 이 무슨 황당한 반전일까? 아들을 살해한 살인범은 너무도 평온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이 드디어 제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하루하루가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나는 영화 ‘밀양’의 이 장면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다. 밀양은 ‘비밀스러운 햇빛’이라는 의미다. 어쩌면 처음부터 이 영화는 양지보다 음지를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여인은 살인범의 충격적인 고백으로 아들을 잃었을 때의 분노보다 더 뜨거운 증오와 저주로 살아간다. ‘하느님이… 죄를 용서해 주셨다고? 어떻게? 내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최면에서 깨어난 걸까? 다시 최면으로 들어간 걸까? 주체할 수 없는 응어리진 분노와 배신감의 절정을 보여주는 여인 신애는 자해하고 증오하고 미워하며 절망의 나락에 빠져든다.

나라면 어떠했을까? 과연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할 수 있을까? 피해자인 내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가해자가 하느님의 용서를 이미 받았다고 한다면. 그것도 나보다 더 행복하고 평온한 모습으로 말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용서는 자기를 죽이려는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라는 어느 노사제의 말이 생각난다. 아들을 죽인 원수가 아니라도 우리네 평범한 일상에서 원수 같은 사람들이 있다. 나의 자존심, 명예, 체면, 인격을 죽인 사람들 말이다. 그런 사람들은 아들을 죽인 원수보다 용서하기가 더 쉬울까?

“사람이 참 간사해요. 앞에서는 해맑게 칭찬하고 격려하면서 뒤로 돌아오는 말은 나에 대한 험담과 비난이랍니다.” F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며 울분을 토해냈다. 그는 자신의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많은 성과를 내고 유명세를 타기도 한다. 그런데 함께 일했던 동료가 앞장서서 자신을 음해하고 다닌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용서가 안 돼요. 절대로.” 그의 말을 들으면서 언젠가 방송을 통해 들은 앵커의 말이 떠올랐다. “얼마간의 해프닝으로 무시하고 넘어가기엔 너무나 당황스러운 소문의 상처…. 카카오톡이든 유튜브든 널린 게 무기이니 이 정도의 음해야 식은 죽 먹기가 된 세상….”

나 역시 소문의 상처로 인해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 그 소문이 어떻게 가공돼 내게 돌아왔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때론 이런 소문이 뾰족한 칼날이 돼 나를 벤 듯 마음에서 피가 나온다. 밉다. 싫다. 시리다. 아프다. 용서란 단어조차 생각하기 싫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해성사로 내 마음속 미움을 털어버리려 애쓸 뿐이다.

어쩌면 ‘용서’의 몫은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내가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해주시는 일일지도.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분을 내 마음속에 들어오시도록 허용하는 것. 딱 거기까지가 아닌가 싶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



성찰하기

1. 그냥 인정해요. 미워하니 화가 나고, 화가 나니 계속 불평하고 불만을 터뜨려요. 그래요. 그게 나예요.

2. 힘을 빼고 놓아버려요. 무거운 걸 들고 있으면 힘들잖아요. 마음에 쌓아둘수록 괴롭고 병이 생겨요. 나를 힘들게 하는 건 원수가 아니라 그를 미워하는 내 감정 때문인지도 몰라요. 그러니 저항하려는 감정에 힘을 빼고 놓아버려요.

3. 받아들여요. 내가 누군가를 용서하기란 어려울 수도 있어요. 단지 내 마음 안에 ‘용서의 하느님’이 들어오시도록 마음을 열고 받아들여요.



<살레시오교육영성센터장, 살레시오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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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04-16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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