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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은수녀의 살다보면] (62) 벗어야 하는 것과 입어야 하는 것

▲ 많은 이들이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잘나 보이고, 있어 보이기 위해 '옷'으로 치장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진정으로 우리가 벗어야 하고 입어야 하는 것에 생각해 봐야 한다. [CNS 자료사진]



단체 메신저 대화방에서 활기찬 추임새로 대화를 해왔던 C가 어느 순간부터 형식적으로 짧게 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걱정되어 "요즘 힘든가 봐요. 기도합니다"라는 위로의 메시지를 남겼다. 며칠 후에 C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족집게시네요. 내가 힘든 줄 어떻게 알고…."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감추려는 듯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요즘 갱년기인지 수녀님의 글만 보고도 울컥하고 눈물이 나더이다." 감정이 올라오는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 나이가 돼서야 철이 드는지…. 과거의 불쌍한 '나'가 자꾸 떠올라서요" 하면서 자신의 마음속 이야기를 토해냈다.

그는 너무 가난해서 학업을 포기하고 그 어린 나이에 돈을 벌어야 했다. 자기 또래들이 말끔한 교복을 입고 무리를 지어 재잘거리며 지나갈 때마다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서글프고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그동안 아프게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그는 억척스럽게 일하면서 자신의 힘으로 야간고등학교와 대학까지 다녔다. 그러면서 C는 환갑을 훌쩍 넘은 나이에 비로소 깨달은 것이 있단다. 자기가 왜 그렇게 '옷'에 집착하면서 살아왔는지. 어린 시절 입지 못했던 '교복'에 대한 상처로 열등한 자신을 감추기 위해,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잘나 보이고, 있어 보이기 위해 '옷'으로 치장하며 살아왔다고 한다.

나는 수녀원에 들어온 이후 늘 수도복만 입고 살아오면서 한 번도 화려한 옷을 입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자존감이 충만해서일까? 아니다. 어쩌면 수도복이 나의 열등감을 가려주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는 수도자에 대한 존중과 예우가 있으니까.

옷은 욕망을 생산하는 공장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옷으로 내가 원하는 정체성을 드러내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영화나 텔레비전에서는 '옷'으로 그 사람의 신분, 직업, 성격, 경제적·지적 능력을 보도록 연출한다. 옷은 가장 쉽게 그 사람을 판단하고 이해할 수 있는 기호이기 때문일 것이다.

알몸으로 태어나서 알몸으로 가는 삶이다. 태초에는 알몸이었다. 부끄러움도 없었다. 하지만 죄로 인한 부끄러움으로 옷을 입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옷'은 자신을 가리거나 드러내는 데 유용하다. 예수님께서도 '옷'으로 능욕을 당하셨다. 사람들은 옷을 벗기고 침을 뱉고 업신여기고 조롱하였다. 그리고 화려한 옷을 다시 입혀 빌라도에게 보내고 병사들은 그 옷을 또 벗기고 제비를 뽑아 나누어 가지기도 했다. 그리고 예수님은 결국 십자가 위에서 알몸으로 가셨다. 마치 우리의 모든 죄를 다 벗어버리듯이.

그런데 예수님은 부활하시어 옷을 입고 나타나셨다. 왜 옷을 다시 입으셨을까? 그렇게 주님을 가까이 모셨던 마리아조차 눈처럼 희고 빛나는 옷을 입으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마리아는 주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 깨달았으리라. 아담의 옷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을. 온갖 더러운 감정과 행실을 벗어 버리고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옷은 입기 위하여 벗어야 한다는 것도.

며칠 전에 C가 다녀갔다. 여전히 세련미가 돋보이는 옷을 입고 밝은 모습으로 찾아왔다. 그 순간 그의 화려한 옷과 액세서리가 별로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많이도 고통받으면서 새로 태어난 그의 모습이 더 밝게 빛나서일까?

"여러분은 옛 인간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 버리고, 새 인간을 입은 사람입니다."(콜로 3,9-10)



성찰하기

1. 나는 내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무엇에 집착할까요? 옷, 음식, 집, 자가용, 브랜드나 학력?

2. 집착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벗어버리려 너무 애쓰지는 마세요. 다만 나의 인격과 영혼을 옷보다 더 빛나게 해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요.

3. 하느님께 선택받고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어요.(콜로 3,12 참조)



<살레시오교육영성센터장, 살레시오수녀회>



[기사원문 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9.04.23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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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복음말씀
<너희 기쁨이 충만하도록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9-11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10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1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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