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 (64)가족 사랑은 다 그런 것 같다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 가족은 가까우면서 멀게 느껴지고, 더 친밀하면서도 외로운 존재다. 가족이라 더 기대하지만 그만큼 상처도 크고 아프다. CNS 자료사진



가족 단톡방에 공지가 올라왔다. “가정의 달 5월에 ‘광김(광산 김씨) 친교 한마당’ 자리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대상은 울엄니 아부지의 자슥, 며늘, 사위, 친ㆍ외손주들….”

우리 가족은 5월이면 하늘 아래 함께 계시지 않는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을 서로 위로받고 싶은가 보다. 유머와 사랑이 담긴 알림을 읽으면서 가슴 적시는 따뜻하고 행복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가족 없이 행복할 수 있을까?’

얼마 전 강연에서 만난 한 가족이 떠올랐다. 나는 그때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고통스러울 때’ 그리고 ‘행복할 때’ 노부부와 함께 온 딸은 “저는 오랫동안 공황장애로 살아왔어요. 남편은 저를 너무 힘들게 하고…” 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어느새 부모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혔다.

부부는 “우리의 고통은 자녀가 고통스러워할 때”라고 말하면서 힐끔 딸을 쳐다봤다. 딸 N은 부모의 시선을 외면하려는 듯 다른 곳을 응시하며 말을 이어갔다. “오랫동안 어두운 터널을 지나왔지요. 하지만 고통이 꼭 고통이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성령 체험을 했어요. 지금은 그저 감사하고 행복해요.” N의 어머니는 “딸이 행복하다 하니 눈물이 날 정도로 행복하다”며 흥분된 어조로 활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순간 N은 신경이 쓰이는지 “아, 괜히 부모님 모시고 왔나 봐요” 하면서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조용히 듣고 있던 P가 내뱉듯이 말했다. “가진 자의 행복을 누리세요.” 그도 속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제가 중학생일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사실 나는 엄마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저 ‘버티자!’ 그때는 그냥 버텨야 한다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주변에서 ‘저 독한 년, 엄마가 죽어도 눈물도 안 흘려’ 하는 소리가 너무 슬프고 무섭더라고요.” 그는 아직도 엄마의 죽음과 가족의 차가운 시선이 악몽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나는 P의 예상치 않은 고백에 조금은 놀랐다. 내가 아는 P는 밝고 유쾌한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세 자녀를 사랑으로 돌보며 살아가는 P에게 그런 엄청난 트라우마가 있었다고는 믿기지 않았다. 사실 마음의 상처는 세월이 지나더라도 흔적이 남는다. 가족에게 받은 상처는 더 아프고 고통스럽다. P를 보면서 생각했다. 사랑받은 적이 없다고 하여 사랑할 능력이 없다는 어설픈 선입견은 절대 금물. 또한, 옛 가족에게 받은 상처가 크다 하여 현재 가족과의 관계도 힘들 거라는 판단을 해서도 안 된다는 것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연구해 온 베셀 반데어 콜크는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면 상처에 대한 자신의 느낌과 감정을 견디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인지하는 법을 배우라”고 권고했다. 부모에게 사랑을 받았지만 지금의 남편에게는 상처를 받은 N, 어머니를 싫어했고 비난하는 가족에게 상처를 받았지만 지금의 가족과 열심히 살아가는 P. 그들은 모두 옛 가족과 지금의 가족 사이를 오가며 ‘상처’받은 감정을 잘 버텨내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 상처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주의 깊게 바라보고 품을 수 있는 용기를 보여줬다. 가족은 가까우면서 멀게 느껴지고, 더 친밀하면서도 외로운 존재다. 가족이라 더 기대하지만 그만큼 상처도 크고 아프다. 사랑은 다 그런 것 같다.

강의가 끝나고 딸은 밝은 표정을 지으며 부모에게 힘있게 팔짱을 꼈다. “엄마, 아빠, 오늘 내가 밥 사요!” 그들의 뒷모습은 아름다웠다. 언젠가는 모두 떠나 보내야 할 사랑하는 사람들. 가족이라서 행복하다.





성찰하기

1. 가족과 식사하고 영화보고 여행하고 같이 걸어요. 함께하는 시간은 가족의 고통과 아픔을 덜게 하고 면역력을 키워주는 소중한 순간입니다.

2. 가족과 눈을 바라보며 대화해요. 대화는 영혼을 살리고 상처를 치유하는 약입니다.

3. 가족 단톡방에서 ‘사랑’을 표현해요. 스마트폰을 단절이 아닌 연결로 만들어요.





<살레시오교육영성센터장, 살레시오수녀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9-05-08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4. 19

1코린 1장 25절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강하기 때문입니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