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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 (67) 엄마, 그 이름만으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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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NS 자료사진




“자식이라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다 퍼주고 싶어. 그런데 생각해보니 엄마에게는 그렇게 못 해준 거 같아 너무 미안해.”

가끔 언니 입에서 “엄마”라는 이름이 나오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그의 가슴속에 묻어둔 엄마에 대한 미안하고도 애잔한 슬픈 감정이 고스란히 나에게도 전달되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용돈을 줄 때 ‘얼마를 드리지?’ 하면서 주저했어.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래서 다음 생애에는 엄마가 내 자식으로 태어났으면 좋겠어. 그래서 내가 지금 자식에게 한 것보다 더 잘해주고 싶어.” 순간 코끝이 찡해지면서 ‘엄마가 되어보지 못한 나는 어떡하지? 딸로 태어난 엄마에게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려왔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불구덩이라도 들어가려 하는 엄마, 자식이 아프면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며 눈물을 흘리는 엄마, 자식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 “나를 데려가지 왜?” 하고 한탄하며 하느님을 원망하는 엄마. 엄마라는 이름을 가진 세상의 수많은 여성이 오늘도 그렇게 자식 때문에 울고 웃고 몸부림치고 때론 목숨을 바치기도 한다. 그래서 자식은 ‘엄마’라는 이름만 들어도 울컥 치밀어오는 감정의 늪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그런데 “엄마”라고 불러보지도 못하고 자란 자식들도 참 많다. ‘엄마’라는 이름을 들어도 아무런 감흥이 없는 그런 아이들이 있다. 며칠 전 수녀님들과 함께 살고 있는 6호 처분을 받은 50여 명의 십대 소녀들(*소년법에 의해 소년 보호시설에 위탁된 아이들)이 축제를 열었다. 보호자들 앞에서 자신들의 재능과 끼를 맘껏 펼치는 무대 위의 소녀들은 ‘과연 비행을 저지른 아이들 맞나?’ 싶을 정도로 밝고 해맑았다. 친구들이 뮤지컬과 춤 그리고 밴드와 노래를 할 때마다 터져 나오는 우렁찬 환호와 목소리는 가슴을 울리는 감동의 파동을 느꼈다.

무대에 올라선 아이 중 몇몇이 관중을 향해 “아빠!” 하고 크게 외쳤다. 나는 그때부터 관중석 주의를 돌아보았다. 한 남성이 아이에게 손을 크게 흔들며 하트를 보냈다. 어느새 아빠의 눈이 촉촉해지면서 슬쩍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빠라고 부른 아이 역시 노래를 따라 하지 못하고 연신 눈물을 닦았다. 가슴이 뭉클했다. 그리곤 혹시 관람석 속에 ‘엄마’는 없나 싶어 찾아보았다. 그러나 손을 흔들어 주는 엄마, 하트를 보내주는 엄마, 눈물을 흘려주는 엄마가 끝내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못 배워도 못생겨도 가난해도 장애가 있어도 엄마다. 뱃속에서 생명으로 잉태한 순간부터 태아 그 자체는 엄마의 생명과 같기 때문이다. 엄마의 살과 피로 심장이 뛰고 피가 돌고 뇌파가 감지된다. 눈꺼풀이 눈을 덮고 머리, 몸통, 팔, 다리가 생긴다. 뱃속에서부터 엄마의 미세한 감정에도 반응하고 좋고 나쁘고 불안하고 노여운 감정을 배운다. 뱃속 아이의 최대 행복은 엄마의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목소리며 최대 고통은 엄마의 분노에 찬 고함이다. 엄마와 아이는 그렇게 서로의 몸과 정신이 하나가 되는 장엄하고도 숭고한 여정을 함께한다. 그래서 ‘엄마’라는 이름은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아름답고 특별하다. ‘엄마’란 이름만 들어도 눈물이 차오르고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행복해지는 이유다.

축제를 마치고 아이들 앞에 선 한 여판사는 자신이 처분을 내린 아이들의 이름을 사랑스럽게 한 명 한 명 불러주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터질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여러분들의 비행 기록은 없다. 그러니 여러분 자리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하길 바란다.” 아이들에게 다시는 이런 처분을 내리고 싶지 않다는 엄마 같은 마음을 지닌 판사의 진심이었으리라.

아이가 돌아갈 본래의 자리는 엄마와 마주할 수 있는 바로 그 자리 아닐까? 같이 살지는 못해도 가끔이라도 아이가 ‘엄마’의 이름을 마음 놓고 부를 수만 있다면 참 좋겠다.



성찰하기

1. 아기를 갖는 경이로운 사명은 하느님께서 여성에게만 허락한 소중한 의무이며 책임이 아닐까요?

2. 여러 가지 가정의 불화 속에서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것, 바로 엄마의 살과 피로 만들어진 자식 아닐까요?

3. 엄마가 떠난 세상에서도 ‘엄마’라는 이름만으로도 행복하다면 이보다 더 크고 위대한 유산이 있을까요?





<살레시오교육영성센터장, 살레시오수녀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9-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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