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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 (74) 아버지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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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의 뒷모습은 늘 쓸쓸함을 안겨준다. CNS 자료사진




“점점 멀어져 가버린 쓸쓸했던 뒷모습에 내 가슴이 다시 아파 온다.”(인순이 노래 ‘아버지’ 중에서)

갑작스레 어머니를 천국으로 떠나보낸 딸은 아버지와 함께 강의를 들으러 왔다. 상실의 슬픔이 너무 커서인지 유난히도 초췌해 보였던 부녀의 모습. ‘마음 돌봄’이란 강의 제목만을 보고 왔으리라.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가장 슬픈 것은…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거예요.” 딸은 울컥 올라오는 감정 때문인지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굽은 허리로 웅크리고 앉아 딸의 이야기를 듣던 아버지는 어깨가 조금씩 흔들리더니 기어이 안경 뒤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 두 손으로 자신의 눈을 꾹 누르고 있었다. 마음 놓고 울지도 못하는 그 모습이 안타깝고 슬퍼서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 역시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떠올라 속이 타들어 갈 정도로 먹먹했다.

나의 아버지도 어머니를 먼저 보내야 했다. 그때 우리 가족은 어머니를 잃은 슬픔이 하도 커서 아버지의 상실감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다. 그런데 어머니의 장례 미사를 시작할 즈음 휠체어를 탄 아버지가 나타났다. ‘아, 그래 아버지가 계셨구나.’ 아버지는 성당 맨 앞에 앉았다. 잔뜩 굽은 허리 탓인지 작아도 너무 작은 아버지의 뒷모습이 왜 그렇게도 애처롭고 안쓰러웠는지. 지켜보는 우리 가족은 물론 장례식에 참례한 많은 사람조차 흐느낌을 감추지 못했던 순간이었다.

어딜 가든 무엇을 하든 엄마를 어지간히도 찾았던 아버지. 잠깐만 보이지 않아도 “네 엄마 어디 갔느냐?”며 어린아이처럼 엄마를 찾았는데. 어떡하지. 이제 혼자네. 그래서일까. 우리 가족은 모이기만 하면 입버릇처럼 “아버지가 먼저 가셨어야 했는데…” 하면서 탄식했었다.

결국, 아버지는 그렇게 가기 싫었던 요양원에서 여생을 보냈어야 했다. 언니는 “아버지가 먼저 가셨어야 했는데…”라며 여전히 후렴구처럼 한탄하면서 주말마다 아버지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왔었다. 하지만 월요일이면 출근해야 하니 주일 저녁에는 아버지를 또 요양원에 돌려보내야만 했다. 이 또한 이별의 연습이었을까. 그럴 때마다 가기 싫어하는 아버지에게 언니가 먼저 가자는 말을 못하고 머뭇거릴 때, 슬그머니 일어나 비닐봉다리 하나 달랑 들고 “가야지” 하면서 엉거주춤 종종걸음으로 현관문을 나섰던 아버지의 굽은 뒷모습. 그 모습이 하도 슬퍼서 가슴이 답답하고 아렸던 기억이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주 오래전 그때도 그랬었다.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아침에 도시락을 안 가져간 날이었다. 수업시간에 뒷문이 스르륵 열리면서 도시락 하나가 앞으로 전달되더니 바로 내 앞에 멈췄다. 깜짝 놀라 창밖을 바라보니 뚜벅뚜벅 계단 아래로 걸어나갔던 아버지의 뒷모습, 한창 젊은 아버지였는데 그 뒷모습마저 초라하고 쓸쓸해 보였다. 언니였다면 아니 엄마였다 하더라도 그렇게 아릿하지는 않았을 텐데.

강의가 끝난 후 L과 아버지는 조금은 밝아진 모습으로 다가왔다. “수녀님, 우리 아버지가 평생을 당신의 마음이나 감정을 들여다보거나 생각해본 적이 없대요. 수녀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그래. 저게 내 마음이야’ 하시더라고요.”

아, 이거였구나! 아버지의 뒷모습이 유독 아린 이유, 슬픔도 아픔도 고통도 기쁨도 마음속에 잔뜩 움켜쥔 채 가장의 어깨에 진 짐의 무게를 버티려고 그렇게 안전거리를 유지하려 했었구나. 그 거리 때문에 더 외롭고 더 고독했으리라. 사랑했지만 시원하게 입 밖에도 제대로 내놓지도 못했던 아버지. 그래서 그 뒷모습이 그토록 쓸쓸하고 애처로웠나 보다.

“긴 시간이 지나도 말하지 못했었던 그래 내가 사랑했었다.”(인순이 노래 ‘아버지’ 중에서)



성찰하기

1. 삶과 가족의 무게로 외로움을 느끼며 살아가는 이 세상의 아버지들. 아주 잠깐이라도 멈춰 마음속 감정을 돌봐줘요.

2. 감정에는 이름이 있어요. 기쁨과 슬픔, 고통과 분노, 공포와 두려움 속에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이름이 있지요.

3. 감정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길 원해요. 울적해도 외로워도 절망해도 끔찍해도…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기만 해도 슬픔의 감정은 가라앉고 기쁨의 감정은 더 커진답니다.





<살레시오교육영성센터장, 살레시오수녀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9-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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