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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 (76)내가 하고 싶은 말, 상대방도 듣고 싶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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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현대미술관(MOMA)에 관람하러 갔었다. 그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위대한 화가의 작품이 아닌, 그 작품 앞에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는 어느 노부부의 뒷모습이었다. 그들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파블로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을 바라보며 속삭이고 있었다. 작품에 집중하는 그만큼 서로의 이야기에도 깊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아내가 말을 하면 남편이 고개를 기울여 열심히 듣고, 남편이 이야기하면 부인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벌거벗은 몸으로 이상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아비뇽의 다섯 여인 앞에 노부부는 무슨 할 이야기가 그렇게 많았을까? 노부부의 진지하고도 엄숙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던 뒷모습은그들이 살면서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누며 살아왔을지 짐작케 해줬다.

강연을 다니면서 부부들에게 어떤 대화를 하는지 물어본다. 주로 직장에서 있던 일, 자녀 이야기 혹은 드라마나 정치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30여 년 결혼생활을 해온 G는 남편이 정치 이야기할 때만 입을 연단다. 평소에는 “밥 뭐 먹어?” “양말 어디 있어?” “내일 뭐 해?” 하는 정도. 하지만 결혼생활은 별 문제 없이 그런대로 잘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행은 절대로 함께 갈 수 없단다. 서로 취향도 안 맞고 재미가 없어서 영화조차 같이 보기 어렵다고. 부부생활은 해도 취미 생활은 함께할 수 없고, 말은 해도 대화는 안 되는 부부가 생각보다 참 많은 것 같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요즘 우리는 말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처럼 말이 참 많구나.’ 나 역시 듣는 사람을 배려하고 듣는 이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대화’가 점점 어렵게 느껴진다. 때로는 여러 명이 모여 이야기를 하는데 듣는 사람이 별로 없다. 마치 말할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누군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치고 들어온다. 이야기의 흐름을 단절시키고 이미 했던 말을 또 하기도 한다. 듣지 않아서다. 듣기보다 말하려는 사람이 더 많다.

왜 우리는 자기 이야기는 잘하는데 듣는 것은 어려울까? 어느 연구 결과에 의하면, 자기 이야기를 할 때 마약과 같이 도파민이란 신경 호르몬이 분비된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누구를 만났고, 무엇을 먹었고, 어디에 놀러 가면서 셀카를 찍고, SNS에 올려 나만의 말 잔치를 이어가고 있는 걸까?

대화는 배려다. 배려가 있는 대화는 아름다운 듀엣 하모니와 같다. 상대방의 호흡에 깊은 주의를 기울이면서 눈을 맞추고 감정을 나눈다. 무엇보다 듀엣송을 부를 때 상대뿐만 아니라 자신의 소리를 잘 들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대화 역시 자기가 하는 말을 스스로 잘 듣는 것이 참 중요하다. 내가 하는 말을 내가 잘 들으면 상대방 입장에서 내 말을 어떻게 듣는지 알아채는 마음의 여백이 생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누군가는 불편하고 듣기 싫을 수도 있으니까. 내가 신나서 즐거워서 한 말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기도 하니까. 같은 말을 했지만, 완전히 다르게 이해해서 친구가 적이 되고 부부가 남이 되니까.

부부가 나이가 들어도 오랫동안 함께 나누고 즐길 수 있는 것, 바로 대화가 아닐까 싶다. 사랑이 서툴러 내 것만 고집하다가도 다시 후회하며 돌아서게 하는 것, 분노와 미움으로 당장 헤어질 듯 싸워도 다시 바라보고 용서하게 만드는 것, 자기 성찰이 담긴 대화다. 말인지 대화인지 혼란스러울 때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하고 싶은 말, 너도 듣고 싶을까?’



성찰하기

1. 말을 하면서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봐요. 상대방의 마음을 만날 수 있어요.

2. 대화는 습관.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주의를 기울이는 대화 시간을 만들어요. 매일 잠깐이라도.

3. 누구의 이야기라도 잘 듣고 놀랄 준비를 해요. 큰 깨달음을 얻을 것이라 믿으면 믿음대로 돼요.





<살레시오교육영성센터장, 살레시오수녀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9-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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