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닫기
하루동안 열지 않습니다.
2019년 12월 13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20주일 - 참 제자의 길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 한민택 신부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당신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고 하십니다. 어떤 뜻에서 하신 말씀일까요? 그 뜻을 알기 위해, 어떤 맥락에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루카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세 번에 걸쳐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십니다. 당신의 신원에 관한 물음과 베드로 사도의 대답(루카 9,20) 이후, 예수님은 첫 번째로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십니다. ‘거룩한 변모 사건’(루카 9,28-36) 이후 두 번째 예고하신 다음,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시고 발걸음을 옮기십니다.(루카 9,51) 오늘 복음은 두 번째와 세 번째 예고 사이, 곧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길 위에 자리합니다.

예루살렘! 분명 그곳은 당신의 예고대로 수난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곳입니다. 오늘 복음의 ‘불’과 ‘세례’는 당신께서 겪으실 수난의 시간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루카 12,49-50)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길 위에서 예수님의 설교는, 종말과 심판에 대한 예고와 더불어 당신을 따르는 제자의 길이 어떤 것인지, 그 길 위에서 내려야 할 결단이 어떤 것인지에 그 초점이 맞춰집니다. 당신이 예루살렘에서 겪으실 고난은 참 제자와 거짓 제자를 판가름낼 종말과 심판의 사건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병고와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운명을 당신 것으로 지시며, 하느님 나라 복음을 선포하시고 그들 안에 아버지의 사랑이 다스리는 나라를 실현하고자 하셨지만, 그것이 종결점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늘 예루살렘을 향해 있었으며, 곧 당신께 닥칠 수난의 시간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수난의 길을 걷고자 하셨던 것일까요? 그 답은 당신을 따라 실제로 그 길을 걸은 제자들을 통해 헤아려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의 수난은 제자 공동체에 큰 위기를 가져왔습니다. 예수님이 붙잡히시면서 제자들은 그분을 버리고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분을 팔아넘긴 이도, 그분을 모른다고 외면한 이도, 모두 당신을 따르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은 슬픈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모였으며,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은 제자들 안에 위기를 불러일으켰고, 그들이 갖고 있던 막연한 상상이나 인간적 기대를 깨뜨렸습니다. 자신의 나약함과 부족함을 경험할 수 있었고, 그보다 더 큰 주님의 용서와 사랑의 힘에 마음의 문을 열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위기를 동반하는 쉽지 않은 여정입니다. 주님의 진정한 제자가 되기 위해 자신을 깨고 버리는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하며, 자신의 적나라한 모습도 대면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죽음의 길인 동시에 부활의 길이기도 합니다. 제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도 인간적 욕심으로 만들어놓은 헛된 하느님 상을 깨뜨리고 하느님과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해가는 기쁨과 환희의 길을 향해 걷고 있는 것입니다.



한민택 신부(수원가톨릭대 교수, 이성과신앙연구소 소장)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9-08-13 등록

관련뉴스

말씀사탕2019. 12. 13

시편 73장 28절
하느님께 가까이 있음이 저에게는 좋으니이다. 저는 주 하느님을 제 피신처로 삼으오리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사목지침서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인터넷 굿뉴스. [전화번호보기]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