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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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훈 위원의 사도행전 이야기] (28) 베드로의 활동(9,32-43)

주님 도우심으로 사람들 치유하고 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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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드로가 리따와 야포에서 한 기적적인 치유 행위들은 이 일대 주민들이 주님을 믿게 했다. 사진은 해안도시 야포에서 바라본 지중해.



사울의 회심과 첫 복음 선포 활동에 이어 사도행전 저자는 베드로 사도의 활동을 전합니다. 리따에서는 중풍 병자를 고치고, 야포에서는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냅니다. 베드로의 활동이 두드러지는 이 두 이야기를 살펴봅니다.



베드로가 중풍 병자를 고치다(9,32-35)

베드로 사도는 예루살렘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요한과 함께 사마리아로 내려가 하느님 말씀을 전했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사마리아의 많은 마을에 복음을 전했습니다.(8,14-25) 사도행전 저자는 이제 베드로가 “모든 지방을 두루 다니다가 리따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가게 되었다”(9,32)고 전합니다.

여기서 모든 지방을 두루 다녔다는 것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사방 곳곳을 다녔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 그리고 멀리는 갈릴래아 지방까지도 포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리따는 오늘날 예루살렘에서 서북쪽으로 약 50㎞, 텔아비브에서 동남쪽으로 25㎞가량 떨어져 있는 ‘로드’라는 곳입니다. 벤구리온 국제공항 인근 도시이지요.

리따에서 베드로는 애네아스라는 중풍 병자를 보게 되는데 그는 8년 전부터 중풍으로 침상에 누워지내야 했습니다. 그를 보고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애네아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고쳐주십니다. 일어나 침상을 정돈하십시오.” 그러자 애네아스가 일어납니다.(9,33-34) 베드로가 중풍 병자 애네아스에게 한 이 말은 예루살렘 성전 아름다운 문 곁에 있던 불구자를 고쳐줄 때 했던 말과 흡사합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3,6)

중풍에 걸려 8년이나 침상에 누워 지내야 했던 사람이 멀쩡하게 일어난 것을 보고 리따와 샤론의 모든 주민이 주님께 돌아섰다고 사도행전 저자는 전합니다.(9,35) 샤론은 야포에서 북쪽 카이사리아에 이르는 지중해 연안의 넓은 평원지대를 말합니다. 이 지역은 이미 필리포스가 복음을 전한 지역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필리포스는 아스돗에 나타나, 카이사리아에 이르기까지 모든 고을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8,40) 그렇다면 베드로가 8년이나 누워 지내야 했던 중풍 병자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낫게 해주었다는 소문은 지역 주민들에게 필리포스가 전한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해주는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도르카스를 다시 살리다(9,36-43)

리따에서 20㎞쯤 떨어진 지중해 연안 해안 도시 야포에 타비타라는 여제자가 있었습니다. 다비타는 아람말이고, 그리스말로는 ‘도르카스’라고 하는데, 영양(羚羊)을 뜻합니다. 이 여제자는 “선행과 자선을 많이 한 사람”이었는데 병이 들어 죽었습니다. 베드로가 리따에서 중풍 병자를 고쳐준 그 무렵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제자의 시신을 씻어 옥상 방에 눕혀 놓고는 사람 둘을 리따로 보내어 베드로에게 지체 없이 와 달라고 요청합니다.(9,36-38)

이 구절에서 몇 가지를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여제자 타비타와 관련해서, 사람들은 타비타의 죽음을 매우 안타깝게 여기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타비타가 선행과 자선을 많이 했을 뿐 아니라, 병이 들어 죽은 타비타의 장례를 바로 치르지 않고 시신을 씻어 옥상 방에 눕혀 놓았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 줍니다. 많은 선행과 자선으로 야포 사람들 사이에서 그만큼 신망과 애정이 두터웠기에 사람들은 뭔가 다른 일을 기대하고 타비타의 시신을 씻어서 눕혀 놓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베드로와 관련해서, 야포의 제자들은 베드로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들은 베드로가 리따에서 중풍 병자를 고쳐준 일을 전해 들은 것은 물론 예루살렘에서 병자들과 더러운 영에 시달리는 이들을 고쳐준 소식도 들었을 것입니다. 나아가 베드로라면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타비타의 시신을 곱게 눕혀 놓고 베드로에게 전갈을 보내 지체없이 오라고 요청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야포에서 온 사람들을 따라 나섭니다. 베드로가 야포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그를 옥상 방으로 데려갑니다. 그곳에서는 과부들이 모두 울면서 베드로에게 다가가 도르카스가 자기들에게 지어준 옷가지들을 보여줍니다.(9,36) 도르카스가 생전에 자기들에게 베푼 자선과 선행이 어떠한지를 베드로에게 알리는 행위이자 또한 베드로에게 도르카스를 살려달라고 청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낸 다음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나서는 시신 쪽으로 돌아서서 “타비타 일어나시오” 하고 말합니다. 그러자 그 여자가 눈을 뜨고는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습니다.(9,40) 베드로가 사람들을 다 내보내고, 죽은 타비타의 이름을 부르면서 “타비타, 일어나시오” 하고 말하며 타비타를 살리는 모습은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 하신 행위(마르 5,40-41; 루카 8,51.54)를 재현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베드로는 먼저 무릎을 꿇고 기도를 바쳤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인 당신 자신의 권능으로 소녀를 살리셨지만 베드로는 주님의 도우심으로 타비타를 살린다는 의미를 함축합니다.

베드로는 일어나 앉은 그 여자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우고는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다시 살아난 도르카스를 보여줍니다. 이 일이 온 야포에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게 됩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한동안 야포에서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머물렀다”(9,43)고 사도행전 저자는 표현합니다.



생각해봅시다

사도행전 저자는 리따와 야포 두 고을에서 있었던 베드로의 치유 활동을 소개함으로써 베드로가 초기 교회의 복음 선포 활동에서 중심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줍니다. 이미 오순절 첫 설교에서부터 베드로는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에서 중심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베드로의 활동 범위는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로 그리고 이제는 유다와 사마리아의 변방 지역으로까지 확대됩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치유 활동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문 곁에 있던 태생 불구자를 고친 일을 비롯해 리따에서 중풍 병자 애네아스를 고친 일 그리고 야포에서 타비타를 살린 일에 이르기까지 베드로가 보여준 기적 행위의 중심은 베드로 사도 자신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이요 스승이신 나자렛 예수님이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점을 이야기해 줍니다. 그리스도 신앙인으로서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의 중심에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주님이 계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음 호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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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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