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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 (79)기억하지 않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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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 태스킹은 주의를 분산시키면서 기억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CNS 자료사진



며칠 전 중학생을 대상으로 청소년영성리더십 교육을 실시했다. 아이들이 어찌나 호기심 가득한 두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지 참으로 행복했다. 가치 교육이기에 다소 추상적이고 어려울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꽤 집중하는 것 같았고 알아들은 듯 고개까지 끄덕여 주었다. 기분이 너무 좋은 나머지 ‘뇌과학’까지 들먹이면서 열정적으로 강의를 끝냈고 마지막에 활동 과제를 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그룹 강사들이 “뭐 배웠느냐?” “어떤 활동 과제를 받았느냐?”라고 물었을 때 아이들은 맹한 표정으로 “몰라요” 했다는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내 강의를 들었던 수녀는 “아니, 그게 참 이상해요. 수업시간에는 그렇게 대답도 잘하고 열심히 작업도 했는데 어찌…” 하면서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누군가 “시험에 안 나오잖아요. 기억해야 할 의미가 없는 거지요”라는 말에 일제히 “아하~” 하며 한숨을 토해냈다.

그런데 그 말은 슬프기는 하지만 맞기도 하다. 의미와 무의미의 차이는 있음과 없음의 차이처럼 그 간극이 매우 크다는 생각이 든다. 신경과학자들에 의하면 의미 없이 사물을 보게 되면 시각을 담당하는 후두엽의 일부만 활성화된다고 한다. 기억의 뇌는 전혀 일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무언가 유의미하게 듣고 보고 읽게 되면 뇌의 새로운 경로가 열리고 뇌 신경세포의 활동이 두 배 혹은 세 배까지 증가하면서 기억의 확장을 이뤄낸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열심히 대답하고 워크북 작업도 했지만, 그에 대한 기억을 인출하지 못했다. 아니 애당초 기억창고에 없었을 것이다. 그 순간 영상을 보듯 그렇게 느낌만으로 알아들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보상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시험에도 나오는 것도 아니었으니 딱 거기까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도 그렇다. 미사 시간에 강론을 열심히 듣고 ‘참 좋다’ 했지만 나중에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다. 사제의 표정과 손짓 그리고 화기애애했던 그 느낌에 대한 기억은 있지만 돌아서면 들은 정보에 대한 기억의 순서가 뒤죽박죽이다.

“책을 덮고 보니, 책 속에 머리를 놓고 왔구나”라는 윌리엄 스태포드(William Stafford)의 시 구절이 생각난다. 책을 열심히 재미있게 읽었지만, 정보가 의미로 전환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더욱이 요즘 같은 스크린 세상에서는 ‘뭐지?’ 하고 묻는 순간 손은 재빨리 스마트폰에 가 있다. 생각하지 않아도 기억하지 않아도 스마트폰 기기가 알아서 기억해준다. 그러니 내가 애써 기억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의 나는 컴퓨터 속에 머리를 두고 다니는 셈이다.

기억이 없으면 과거도 현재도 없다. 과거에 대한 기억이 있어 현재도 있고 또 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점점 내 기억 용량이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하다. 주의력을 분산시키는 매체 환경은 지속적인 수행을 어렵게 만든다. 그런데 저절로 기억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무언가를 기억하기 위해 읽고 들은 것을 애써 지각하고 인지하는 의미 해석의 단계를 거치는 연습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나는 오늘 하루 듣고 읽은 경험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나? 혹여 아이들처럼 저장 안 되는 임시 기억 시스템만 작동시키면서 알고 있다는 느낌만으로 지낸다면 심히 애통한 일이다.



성찰하기

1. 반드시 옛 기억(배경 지식)을 통과해야만 새로운 기억을 불러올 수 있다고 합니다. 오늘 의미 있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 집중하고 기억해야 내일도 기억할 수 있겠지요.

2. 멀티 태스킹은 주의를 분산시키면서 기억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해요. 그러니 한 번에 한 가지씩만 해요.

3. 걱정과 스트레스는 기억 용량을 줄어들게 해요. 가능한 긍정적으로 기쁘게 살아야 건망증이나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살레시오교육영성센터장, 살레시오수녀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9-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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