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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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복음] 성 김대건 사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 순교자의 유산(遺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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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박해(1839) 18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에 한국 순교자 대축일을 지내며 순교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프랑스 유학 시절, 순례객들과 성 도리 헨리코 신부님의 고향 본당을 순례하던 중, 그곳 본당 신부님에게서 이런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200년 전 순교자들의 죽음이 일본의 가미카제와 어떻게 다른지 분명히 밝혀야 합니다.” 가미카제뿐 아니라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자살폭탄 테러가 현대인의 공분을 사는 이유는 그들 스스로 ‘순국’ 혹은 ‘순교’라는 이름을 붙이지만, 사실 그것은 자신과 남의 생명을 해치는 폭력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순교는 그것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순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행위입니다. 그분의 죽음은 우리 인간을 위해 당신 자신을 바치신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렇기에 순교는 사랑의 행위이며, 인간의 생명에 대한 열정의 표현입니다. 순교는 폭력적이지 않지만 놀라운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연약하고 쓸모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순교에 담긴 자신을 내어놓는 사랑은 핵폭탄보다 큰 힘으로 인간과 역사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순교자들의 삶을 묵상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그분들의 순교가 신앙에 대한 깊은 이해로부터 비롯되었는지 살피는 것은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에게는 오늘날 순교라는 행위가 받아들일 수 없는 비상식적 행위로 다가옵니다. 그들은 박해라는 극단적 상황에 대해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순교 행위가 무가치하고 무의미하다고 여깁니다. 혹자는 순교가 내세의 삶에 대한 애착으로 인한 지상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을 포기하기보다 죽음을 택한 그들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순교자들이 남긴 삶의 모습과 언행을 통해 결코 그런 것이 아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가령 기해박해 때 순교하신 정하상 성인의 ‘상재상서’를 통해 당시 신자들이 신앙에 대해 얼마나 깊은 이해를 지니고 있었는지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믿는 바를 이해하는 것, 신앙의 신비 안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 그것 없이 순교라는 행위는 불가능합니다.

순교자들은 자신들이 누구를 믿고 있었는지, 순교 행위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었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자신이 만난 하느님, 사랑 지극한 예수님, 사랑의 공동체와 그 안에 현존하시는 성령을 저버릴 수 없었습니다. 교회와 하느님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귀한 존재인지 발견하였습니다. 신앙이 그들을 변화시킨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신앙 없이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었습니다. 신앙이 삶의 전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순교자들의 삶과 죽음은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과연 내가 믿는 분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나의 신앙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가? 나는 신앙을 통해 나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고, 삶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있는가? 우리가 이루는 공동체는 진정 사랑 가득한, 서로를 보듬어 안아주고 받아주는 따뜻한 공동체인가?

순교자들의 피로 지킨 신앙은 오늘 우리가 다시금 신앙의 활력을 찾도록 강한 힘으로 우리 마음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한민택 신부(수원가톨릭대 교수, 이성과신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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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09-18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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