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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복음] 연중 제26주일 - 믿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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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민택 신부



“믿지 않을 것이다.”(루카 16,31)

오늘 복음에 나오는 부자가 듣기에 혹독하기 그지없는 말씀입니다. 믿을 수 없기에 그의 형제는 모두 자신과 같은 운명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은 우리에게도 혹독하게 다가옵니다. 믿음에 있어서는 우리 또한 종종 그들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참제자’됨의 여정에서 우리는 ‘불신앙’이라는 걸림돌을 만나게 됩니다. “성당은 다니지만, 변한 것이 하나도 없어요. 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믿어온 거지요.” 한 자매님의 푸념 섞인 고백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종종 발견하는 것은, 믿음이 어려우며 믿음을 통해 변화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잘 알기 때문입니다. 왜 그런 걸까요?

제자됨의 길에서 만나는 불신앙의 원인에 대해 오늘 복음은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루카 16,31)

이 말씀은 그들이 믿지 않음이 ‘듣지 않음’에서 비롯된다고 알려줍니다. 그들이 믿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듣지 않고, 들으려 하지도 않기 때문이며, 그것은 그들의 마음이 열려 있지 않고 오직 자신에게만 집중되어 닫혀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복음 말씀은 또 하나의 중요한 실마리를 전해줍니다. 우리는 묻습니다. 부자가 그 고통스러운 곳에 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브라함 할아버지와 그 곁에 있는 라자로에게 가지 못하도록 하는 ‘큰 구렁’을 왜 건너지 못하는 것일까요?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루카 16,25)

이 말씀은 부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 누리던 것들이 모두 ‘받은 것’임을 일깨워줍니다. 예, 부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습니다. 그런 그가 죽은 후에 고통스러운 곳에서 고초를 겪고 있는 이유는, 좋은 것을 받았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실을 잊고 산 것일 것입니다. 좋은 것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이지만, 그 좋은 것을 그가 모두 받았다는 것을 잊을 때, 그 모든 것을 영원히 소유할 수 있다고 여길 때, 그의 마음이 그것에만 머물러 있을 때, 그리하여 곁에서 죽어가는 라자로의 불쌍한 처지가 전혀 아무렇지도 않게 될 때, 그의 삶은 이미 넘어설 수 없는 구렁 저편으로 향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죽어서 그가 가진 좋은 것들이 그에게서 거두어집니다. 그가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던 것임이 드러납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루카 12,20) 하는 말씀이 메아리치는 듯합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도 질문을 던지며 불신앙을 넘어서라고 합니다. 우리는 과연 듣는 사람인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전부 주어졌다는 것을 기억하는가? 불쌍한 처지로 죽어가는 이웃의 삶에서 예수님의 얼굴을 발견하는가? 이 물음 앞에서 겸손되이 고개를 숙일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불신앙을 넘어서고 있는 것입니다.



한민택 신부(수원가톨릭대 교수, 이성과신앙연구소 소장)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9-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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