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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복음]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 -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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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상만 신부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제자들의 말을 믿지 못하던 토마스에게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요한 20,27)라고 하시며 당신의 부활을 직접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축복하신 내용이다.

그리스도교는 근본적으로 보고 나서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보게 되는 종교이다. 다시 말해, 알고 나서 믿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전혀 믿지 못한 토마스의 불신앙과 의심을 책망하며, 그를 회의론자나 의심하는 사람의 대명사로 말한다.

그러나 토마스가 보인 행동은 단순한 회의론자로서 막연히 부정을 위한 의심이 아니라 자신의 믿음을 더욱 확고하게 하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그를 통해서 토마스는 누구보다 더 강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실제로 아무런 의심도 없이 예수님께 대한 완전한 믿음을 갖기는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사실 예수님을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말을 듣자마자 “아멘” 하며 금방 받아들이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엄청난 축복을 받은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렇게 쉽게 믿지 못하고 우선 의심부터 하기 때문이다.

토마스는 다른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자기들에게 나타나셨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아마도 ‘자네들이 본 것은 분명히 알겠는데,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데?’라고 말했을 것이다. 토마스는 남이 아닌 내가 직접 보고 만져봐야 믿을 수 있다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오기같아 보이지만, 토마스의 답변을 통해서 볼 때 ‘신앙은 객관적인 것으로 통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체험으로 시작되는 것’임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토마스의 입장으로 볼 때, 신앙은 자기 삶에 체험적인 믿음으로 들어와야 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자기의 신앙이 어느 순간 3인칭 신앙으로 멈춰 서거나 그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른 제자들이 보았으니까 나도 당연히 본 것이 되거나, 다른 사람들이 믿으니까 나도 믿어야 하는 신앙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대한 신앙은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통해 철저히 자기만의 체험적인 신앙으로 바뀌어야 한다.

신앙이란 철저히 개인적인 결단과 도전이고, 하느님을 향한 삶 전체의 내어줌이기에 남의 신앙이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토마스가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한 것처럼, 우리도 남이 대신 체험한 하느님이 아니라 내가 체험한 “나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의 신앙에 의해서 뒤따라가는 신앙만으로는 우리의 신앙이 살아 움직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못하던 토마스를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 번 다락방을 찾아주셨다. 그렇다면 아직 자신의 믿음이 성글지 않은 채 믿음생활을 하는 우리를 위해서도 다시 한 번 찾아오실 것이다. 그리고 분명히 말씀하실 것이다. “이제 네 부모의 신앙이 아니라 네 신앙으로 나를 보고 나를 만져라. 네가 아는 사람의 신앙이 아니라 네 신앙으로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네 신앙으로 나를 믿어라.”

“믿음으로써, 우리는 세상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마련되었음을, 따라서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음을 깨닫습니다.”(히브 11,3)



임상만 신부 (서울대교구 상도동본당 주임)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0-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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