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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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68)에필로그<3>- 사도행전에 비춰본 바오로의 생애와 서간②

박해의 시련에도 이어나간 믿음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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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오로 사도의 1차 선교 여행 때 거쳐 간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 유적. 이 도시는 로마 속주 갈라티아의 남쪽에 있는 주요 도시다.



다마스쿠스 사건, 곧 회심 이후 사도행전은 바오로가 다마스쿠스에서 복음을 선포하다가 탈출해 예루살렘에 갔다고 전하지만(9,20-26), 갈라티아서에서는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마스쿠스로 돌아갔고 3년 후에 예루살렘에 갔다고 전합니다.(갈라 1,16-18) 지난 호 끝 부분에서 제기한 몇 가지 물음에 대해 살펴보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아라비아에서 삶을 숙고하다

바오로는 왜 아라비아로 갔을까요? 이방인의 사도로서 선교 활동을 하러 갔다는 설명과 자신의 회심 사건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정리하기 위해서 갔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후자의 설명에 더 끌립니다.

바오로가 말하는 아라비아는 나바테아 왕국을 가리킨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당시 나바테아 왕국은 요르단 강 동쪽과 남쪽으로는 시나이 반도까지 차지하고 있었고, 수도는 세계 문화유산으로 잘 알려진 페트라였습니다. 나바테아 사람들은 유다인들을 싫어했다고 합니다. 바오로는 ‘이방인의 사도’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그의 1~3차 선교 여행에서 볼 수 있듯이, 다른 민족들에게 복음을 선포할 때도 일차적으로는 유다인 회당을 찾았습니다. 따라서 회심 이후에 선교하러 나바테아 왕국에 갔다는 것은 설득력이 좀 약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추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9장에 나오는 것처럼 회심 사건 후 바오로는 다마스쿠스에서 예수님을 믿으라고 선포 활동을 시작했고, 사람들은 바오로를 이상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특히 유다인들은 바오로의 선포 활동에 당혹함을 금치 못했을 것이고 시비를 걸고 박해를 가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오로는 위험도 피하고 자신의 삶을 정리하기 위해 아라비아로 건너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요.

바오로가 아라비아의 어디에서, 얼마나 머물렀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아라비아 생활을 마친 그는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밝혔듯이 다마스쿠스로 돌아와 선교 활동을 하다가 박해를 피해 다마스쿠스를 탈출해서 예루살렘에 갑니다.



박해를 피해 예루살렘에 가다

바오로가 회심 이후 예루살렘에 처음 올라간 것은 언제였을까요? 그는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그러고 나서 삼 년 후”(갈라 1,18)에 예루살렘에 갔다고 전합니다. 이 표현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아라비아에서 다마스쿠스로 돌아간 지 3년 후’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라는 표현을 ‘회심하고 나서’라고 보는 학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 설명을 따르면 바오로는 회심하고 3년 후 처음 예루살렘에 갔다고 하겠습니다.

바오로는 갈라티아서에서 “그러고 나서 십사 년 뒤에 나는 바르나바와 함께 티토도 데리고 예루살렘에 다시 올라갔습니다”라고 씁니다.(갈라 2,1) 그리고 이 예루살렘 방문 때 예루살렘 사도 회의가 열렸다는 데에 성경학자들은 의견이 일치합니다. 그런데 “십사 년 뒤”라는 표현을 두고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첫 번째로 예루살렘에 간 지 14년 뒤일 수도 있고, 첫 예루살렘 방문에 이어 시리아와 킬리키아 지방을 거쳐 간 후(갈라 1,21) 14년 뒤일 수도 있습니다. 또 회심 사건 14년 뒤일 수도 있습니다.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고, 연대를 정확히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의 일차적 목적도 아닙니다만, 여기서는 ‘회심 후 3년’, ‘회심 후 14년’의 가설을 받아들여 회심 이후 바오로의 행적 또는 활동을 간단히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바오로는 ‘3년’ ‘14년’이라고 표현했지만, 이 기간 역시 정확히 만 14년이라기보다는 대략적인 햇수를 가리킨다는 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마스쿠스 사건 후 바오로는 다마스쿠스에서 한동안 지내다가 아라비아 곧 나바테아 왕국으로 건너갑니다. 그곳에서 삶의 방향을 정리하고 다마스쿠스로 돌아와 선교 활동을 하다가 자신을 죽이려는 음모가 계속되자 탈출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예루살렘에서 베드로와 주님의 형제인 야고보를 만나고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선포합니다. 예루살렘에 있던 그리스계 유다인들이 바오로를 죽이려고 하자, 바오로는 형제들의 도움으로 카이사리아를 거쳐 고향 타르수스로 갑니다.

그런데 갈라티아서에 따르면, 바오로는 카이사리아에서 바로 타르수스로 간 것이 아니라 시리아와 킬리키아 지방으로 갑니다.(갈라 1.21) 시리아는 다마스쿠스와 안티오키아 같은 큰 도시들이 있는 지방입니다. 그리고 시리아 북쪽과 일부를 경계하고 있는 지방이 바로 오늘날 터키의 남부 지방인 킬리키아입니다. 타르수스는 이 킬리키아 지방의 수도였지요. 바오로는 시리아와 킬리키아 지방을 거치면서 선교 활동을 계속했을 것입니다.



안티오키아에서 복음을 전하다

그러는 사이에 안티오키아에 복음이 전해지고 안티오키아의 신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됩니다. 안티오키아 교회에 관한 소문을 들은 예루살렘 교회는 바르나바를 안티오키아에 내려보내고, 안티오키아에 내려온 바르나바는 바오로가 필요하다고 보고 타르수스로 가서 바오로를 데려옵니다. 그리고 바오로는 만 1년 동안 안티오키아 교회 신자들을 가르치며 복음을 전합니다.(사도 11,19-26)

그즈음에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유다 지방에 큰 기근이 들고 안티오키아 교회는 구호 헌금을 모아 바르나바와 바오로 편에 예루살렘 원로들에게 보냅니다.(사도 11,27-30) 바오로에게는 이 방문이 회심 후 두 번째 예루살렘 방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은 이 두 번째 방문에서 바오로가 첫 번째 방문과 달리 베드로나 주님의 형제 야고보를 만났다는 언급은 전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2장이 전하는 것처럼 야고보가 헤로데 임금(헤로데 아그리파스 1세)에 의해 순교하고 베드로도 감옥에 갇혔다가 빠져나와 어디론가 피신한 후여서 만나지 못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야고보를 죽인 헤로데 아그리파스가 44년 9월에 죽었다는 기록을 감안한다면, 바오로의 두 번째 예루살렘 방문은 대략 44년을 전후한 시기라고 추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1차 선교 여행을 마치다

바르나바와 바오로는 예루살렘 방문을 마치고 요한 마르코를 데리고 안티오키아로 내려갔다가 얼마 후 함께 첫 번째 선교 여행을 떠납니다. 이 1차 선교 여행은 키프로스 섬의 살라미스와 파포스를 거쳐 소아시아(오늘날의 터키) 남부인 팜필리아의 페르게-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이코니온-리스트라-데르베까지 갔다가 되돌아서 안티오키아로 돌아오는 여정이었습니다.(사도 13,3─14,27) 「주석 성경」의 ‘연대표’에 따르면 바오로의 1차 선교 여행은 45~49년 사이에 이루어집니다.

사도행전은 바오로가 1차 선교 여행을 마치고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오래 머물렀다고 하는데(사도 14,28),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지는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기간에 안티오키아 교회에는 새로운 문제가 불거져 나옵니다. 유다인이 아닌 다른 민족 출신들, 곧 그리스계의 신자들이 할례를 받지 않은 것에 대해 유다에서 내려온 신자들이 문제로 삼은 것입니다. 분쟁과 논란이 일어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안티오키아 교회는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비롯한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파견합니다. 이렇게 해서 예루살렘에서는 사도 회의가 소집되고 사도 회의는 다른 민족 출신들에게는 율법 준수에 대한 과도한 부담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합니다.(사도 15,1-35) 「주석 성경」 ‘연대표’는 예루살렘 사도 회의가 48~49년에 열렸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예루살렘 사도 회의의 결정은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복음 선포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바오로는 더욱 담대하게 다른 민족들 곧 이방인들에게 복음 선포하는 힘을 얻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로 인해 바오로는 모세의 전통에 충실한 열성적인 유다인들에게 더욱 심한 미움과 박해의 대상이 됩니다.

한국평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장

alfonso84@hanmail.net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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