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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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기억과 감사, 친교를 실천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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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맛보고 눈여겨보아라, 주님께서 얼마나 좋으신지!”(시편 34,9)

오래 전에 루르드 성지 한 가운데에 있는 천막 성당에서 성체 조배를 할 때 한 체험이 지금 떠오릅니다. 임종을 앞둔 어느 수녀님이 병원 침대에 실려 천막 안에 들어왔습니다. 제대 위에 모셔진 성체를 한참 바라보는 수녀님 얼굴이 일순간 환하게 빛났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 백성 안에서 경배하며 보낸 그분의 한 생애가 일순간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그 수녀님은 받은 모든 선물에 대해 감사와 경배를 드리는 듯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성체 단식을 한 후에 맞은 성체 성혈 대축일은 저에게 성체성사의 의미에 대해 깊이 성찰하도록 초대합니다. 오늘 복음은 제1독서와 제2독서의 빛에 비춰 성찰할 수 있습니다.



1. 하느님을 기억하고 감사하라

제1독서는 모세가 요르단강을 건너기 전에 모압 평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 설교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신명기 8장 1절에 제1독서 주제가 함축돼 있습니다. “너희는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모든 계명을 명심하여 실천하여라. 그러면 너희가 살 수 있고 번성할 것이다.” 하느님에 대한 경외에 바탕을 두고 그분 계명을 실천하며 사는 의로운 삶, 그 결과의 가시적인 표징인 하느님의 축복 받는 삶은 구약에서 말하는 지혜로운 인생의 핵심입니다. ‘너희’, ‘오늘’이라는 말은 모세의 이 가르침이 모세 시대 이스라엘인만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 21세기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임을 보여 줍니다.

이어서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그들이 광야에서 만나가 상징하는 하느님 섭리로, 주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던 시절, 광야 체험을 ‘기억하도록’, 종살이에서 이끌어주신 하느님을 “잊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께서 해 주신 일 하나도 잊지 마라.”(시편 103,2) 하느님이 내 삶에서 일하신 것에 대한 기억에서 찬미가 흘러나옵니다. 구약에서 찬미는 감사라는 개념과 유사합니다.

‘성체성사’(eucharistia)는 그리스어 ‘감사’라는 말에서 유래합니다. 성체를 모시고 사는 그리스도인은 피조물에게 영감과 활기를 불어넣어 창조주를 향해 ‘감사’의 노래가 터져나오게 하는 사람입니다.



2. 그리스도의 몸과 친교와 일치를 나누라

성체성사는 초대 교회의 중심이었고(사도 2,42) 세상 끝 날까지 그러할 것입니다. 바오로는 갓 태어난 코린토 교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여러 곳에서 공동체의 성장을 바라는 사목자의 마음으로 성체성사의 의미에 대해 가르칩니다. 아마도 코린토라는 지역이 아프로디테 여신을 비롯해 고대 여러 동양 종교가 혼재하던 곳이라 신자들이 이교 예식을 매일 주변에서 목격하고 참여하기도 하면서 주님의 만찬을 이교 예식과 다를 바 없이 여기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먼저 바오로는 오늘 제1독서에서 성체성사의 필수적인 전제이자 결과인 그리스도와의 일치와 친교에 대해 가르칩니다. 성체성사에 참여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동참하는’ 것, 곧 그리스도와 친교를 나누는 것, 나아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로서 일치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오로는 또한 성체성사 전에 양심성찰을 하라고 권고하기도 합니다. 빵의 형상 안에 실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을 강조하면서 그것을 불신하는 사람에게는 무서운 결과가 닥쳐올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합니다. “주님의 몸을 분별없이 먹고 마시는 자는 자신에 대한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1코린 11,29)



3. 가서 복음을 실천하라

오늘 복음에서 요한은 다른 복음서 저자들처럼 성체성사 제정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지만 성체성사의 신비를 명시적으로 설명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생명의 빵이며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분이 주시는 빵은 물질적인 빵이 아니라 당신의 ‘살’(사륵스(sarx))입니다. 성경 용어에서 ‘살’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말씀이 사람(살)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 예수님의 살은 은유가 아니라 실제로 십자가 위에서 그분이 우리를 위해 주신 몸입니다.

예수님은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라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그분의 십자가를 암시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그분 몸을 주시고 그분 피를 쏟을 것입니다. 피와 물이 예수님 옆구리에서 흘러나올 때 그분 신부인 교회가 탄생합니다.

예수님은 또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그분의 살, 참된 빵을 먹고 그분의 피를 마시면서 그분을 닮아가는 사람은 하느님이 주시는 최상의 선물, 하느님과의 친교를 선물로 받습니다.

바오로가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라고 한 고백은 요한이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라고 한 말과 같은 의미일 것입니다. 성체성사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을 닮은 모습, 그분 자녀의 모습으로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미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한스 스콧) 오늘도 미사에서 예수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는 교회와 신자들은 예수님이 처음에 당신 몸을 선물로 주시면서 원하신 대로 세상에 생명을 전달할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특히 세상 안에 하느님을 모셔갈 수 있는 식별의 지혜를 청합니다.

“식별은 인간의 모든 생각과 모든 사고를 검토합니다. 악한 모든 것과 하느님이 기뻐하지 않은 모든 것을 찾아내어 흩어버립니다. 그런 방식으로 인간을 보호합니다.”(요한 카시아노) 하느님이 없다면 이 세상의 문화와 정치, 과학, 경제, 사회는 신적 영감이 결여된 세계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함께 가서 복음을 실천하십시오.”

아멘!




임숙희(레지나) 엔아르케성경삶연구소 소장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0-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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