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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207) 500원의 행복

500원이 가져다 준 5분의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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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오후, 강의를 하나 들을 것이 있어 학교에 갔습니다. 강의 후 교문을 나서는데, 시각은 오후 4시 20분! 갑자기 출출하다는 생각이 들기에 ‘몇 시간만 참으면 저녁을 먹을 텐데…’하면서 집으로 가는 도중, 평소보다 배가 더 고팠는지 ‘꼬르륵, 꼬르륵’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호주머니를 보니 단돈 500원이 있었습니다. 속으로 ‘에이, 이 돈으로 뭐하나’하는 차에 저 멀리 어묵집이 보였습니다. 걸음을 늦춰 길거리 노점 가까이로 가서 기웃거렸더니 어묵 한 개가 500원이었습니다.

“으히히, 저거 사 먹어야겠다!”

노점에는 아주머니가 떡볶이 재료를 만들고 계셨고, 태연히 들어가 어묵을 집어 간장을 바른 후, 한 입 베어 물었습니다. 그리고 종이컵에 어묵국물을 받아 천천히 먹었습니다. 아주 천천히, 어묵 한 입에 국물 한 그릇, 또 어묵 한 입에 국물 한 그릇….

그렇게 오물거리며 어묵을 먹으며 주변을 돌아보았습니다. 천천히 먹는 만큼의 속도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과 달리는 차들도 바라보고, 누군가를 초조히 아니 설레며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았습니다. 유모차에 몸을 싣고 천천히 걸어가는 할머니도 보고, 엄마 손에 이끌려 어디론가 종종거리며 가는 아이 얼굴도 보았습니다. 곧 비가 올 것 같은 먹구름 가득 낀 하늘도 보고, 멀리 산자락 주변에 해가 뉘엿거리는 모습도 보고, 살결을 스치며 지나가는 선선한 가을바람도 느껴보았습니다. 연인인 듯한 젊은 사람 둘이 들어와 떡볶이 한 접시를 시켜 서로 먹여주는 예쁜 광경도 보고, 고등학생 정도 되는 교복 입은 여학생 둘이 들어와 그 짧은 시간에 메시지를 날리며 튀김 한 접시를 후다닥 먹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일상의 평범한 오후 4시 25분에서 4시 30분까지, 5분의 시간을 500원을 통해 천천히 즐기며 만끽하게 됐습니다. 어묵 한 입에 어묵국물 한 그릇과 함께! 500원을 내고 세상 앞에 멈추어 서서, 도심 가운데에서 모든 흘러가는 것을 보면서 그저 말없이 평온하게 머물러 있었습니다.

진정 혼자서 천천히, 특별하지도 않은, 아니 단순해서 아무 것도 아닌 듯한 그런 시간의 한 순간을 소중히 아끼며 바라보았습니다. 그리 5분의 평온함을 즐기고 만끽하다보니 어묵국물만 다섯 잔을 마셔 물배 부른 소중한 시간을 보낸 후 길을 걸었습니다. 걷다보니 다시 내가 해야할 일들, 밀린 일들, 이리저리 주어진 일들이 떠오르기 시작했고, 또 바삐 집으로 가는 내 모습을 보았습니다. 할 일에 이끌려, 해야할 일에 치여 어디론가 끌려가는 자신을 보았습니다. 500원만 더 있었으면, 좀 더 볼 수 있었을 그리 평범한 우리 주변 일상의 순간들. 하지만 그 500원이 만들어 준 단순하여 맑기까지 한 5분의 세상. 가끔 바쁜 삶을 멈추고, 주변을 돌아보다 보면 평소 우리 곁에 있었지만 보지 못하던 세상, 단순하면서 평범한 세상살이를 유심히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나, 비록 스쳐 지나가는 존재지만, 서로가 한 세상 한 공간 한 순간을 함께 느끼는 ‘소중해서 고마운 존재’라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됩니다. 때로는 내가 잘 멈추기만 하면 세상은 자연스럽게 그리도 잘 보입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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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3-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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