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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225) 드리지 못한 용돈

어머니께서 정성스레 다려 주신 손수건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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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본당 신자들과 즐겁게 사는 교구 신부님을 뵌 적이 있습니다. 워낙 가진 것을 잘 나누는 신부님이라 그 날도 전화하셔서 ‘사제관에 잠깐 왔다가라’하기에 갔더니, 지난 성탄, 신정, 구정 때에 주변 분들로부터 받은 것들을 나누려고 부른 것입니다. 사제관 들어가서 정면으로 보이는 탁자 위에 신간 책, 수건, 내의 등을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청소를 하던 신부님은 종이 가방에 그것들을 담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자리에 앉더니,

“석진아! 너 요즘 가톨릭신문에 글 소재 떨어졌지? 그래서 내가 좋은 소재 하나 줄께. 이거 생생한 이야기야!”

“헤헤, 뭔데요?”

“음, 이번 구정 때 일이야! 그 날 오전에 본당에서 미사 끝내고 오랜만에 어머니 집에 갔어! 그 날은 구정이고 해서, 어머니께 용돈을 좀 드리려고 새 봉투에 새 돈을 담아서 부지런히 달려갔지. 그리고 어머니께 새해 인사를 드리고, 형제들과 담소도 나누고, 점심으로 떡국도 먹고! 그리고 오후에 가족들이 북적대고, 조카들도 세배하기에 세뱃돈 주랴, 그렇게 지내다보니 정작 어머니께 드리려고 준비해간 그 용돈 봉투를 까맣게 잊어버린 것 있지! 용돈 조금 드리는 걸 잊은 채, 저녁미사가 있어 어머니 집을 나오는데, 어머니는 집 앞 까지 따라 나오며, 정성스레 다려놓은 손수건을 내게 주시더니 ‘건강 잘 챙겨라’고 말씀하시더라. 그리고 나는 인사를 또 드리고 본당으로 돌아와서, 저녁미사를 드리려고 제의를 입는 순간, 생각이 난거야, 드리지 못한 용돈이! 어찌나 아쉬운지! 그렇게 저녁 미사를 마치고 사제관에 들어와 방 정리를 하다가 콧물이 나는 통에 어머니가 주신 손수건으로 코를 풀었는데, 글쎄, 손수건 속에서 지폐 몇 장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거야. 알고 보니, 어머니는 당신 형편도 넉넉지 않으시면서 구정에 세배 올 아들 신부 줄려고 오천 원짜리, 만 원짜리 지폐 몇 장을 모아 그 손수건 안에 담아 나를 준 거지!”

“아, 역시 어머니 마음, 짠하네요.”

“석진아, 그 날의 경험을 통해 ‘봉헌’이라는 단어의 깊은 의미를 깨달았어. 사실 나는 하느님께 내 자신을 봉헌하는 삶을 산다고 하면서, 그 사실을 자주 잊어버려. 그런데 어머니는 그 날 자식들, 손자들이 아무리 정신없게 해도, 그 상황에서도 어렵사리 모은 소중한 세배 돈을 나에게 기필코 주시려 했던 것이지! 주님께 봉헌하는 마음으로! 나는 우리 어머니 마음을 보면서, 순간, ‘봉헌은 간절함이다’라는 생각이 들더라. 봉헌은 진정 간절한 마음에서 나오는 간절한 행위! 어때, 이 내용 괜찮아?”

신부님은 나에게 그 사연을 말하면서, 어머니께 ‘드리지 못한 용돈’의 아쉬움을 푸는 것 같았습니다. 또한 이야기를 듣는 나 역시, 나를 돌아보았습니다.

‘봉헌 생활’을 한다며 수도복 자락 흩날리며 세상 속에서 살지만, 정작 내 자신이 어떤 삶을 사는 사람인지 잊고 살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 손수건을 건네는 어머니처럼, 주님은 날마다 성체 성사로 당신을 나에게 건네주셨다는 사실! 그러고 보니 주님은 한 날, 한 순간도 나를 잊지 않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부끄럽게 시리!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4-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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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86장 5절
주님은 어지시고 기꺼이 용서하시는 분, 주님을 부르는 모든 이에게 자애가 크시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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