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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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쩌나] 424. 미얀마 사태와 수치 여사

홍성남 신부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상담전화: 02-727-2516 ※상담을 원하시면 010-5032-7422로 ‘문자’를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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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 평소에 미얀마의 수치 여사를 존경해온 사람입니다. 미얀마의 오랜 군부독재 정권과 각을 세우고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해온 수치 여사가 대단한 사람이고 노벨 평화상까지 받은 인물인데, 최근 로힝야족을 대하는 모습을 보고 실망이 큽니다. 미얀마 민주화의 화신이라는 수치 여사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또 순한 불교 국가인 미얀마 사람들이 왜 그런 잔인한 짓을 하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답 : 수치 여사의 대응에 대한 국제적인 비판이 드셉니다. 심지어 노벨상을 박탈하자는 말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수치 여사가 왜 그런 대응을 하는지에 대한 사회심리학자들의 분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미얀마는 오랫동안 군부가 통치를 해왔는데 우리나라 군부독재 시절처럼 군부가 나라의 모든 것을 다 장악해왔습니다. 군부에 대한 비판은 전혀 허용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언론을 심하게 통제하고 심지어 군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모질게 고문하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군부에 수치 여사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국제적인 여론 때문에 제거도 못 하고 연금해온 것입니다. 그러다가 국제적인 시선을 의식해 수치 여사와 일종의 협상을 한 것이지요. 마치 미얀마가 민주화가 된 것처럼 말입니다. 사실은 미얀마의 민주화는 마치 살얼음판을 걷듯이 위태롭습니다. 그러다가 로힝야족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로힝야족은 언론에서 말하듯이 미얀마와는 심리적 적대 관계인 사람들입니다. 영국을 대신해 미얀마를 통치하면서 미얀마 국민들의 마음에 심한 상처를 준 사람들입니다. 지금 미얀마 사람들이 로힝야족을 살상하는 이면에는 이런 오랜 적개심이 깔려 있습니다. 그런데 미얀마 군부는 사람들의 이런 마음을 전략적으로 부추기고 있습니다. 군부가 저지르는 이런 살상행위 뒤에는 면밀한 계산이 깔려 있습니다. 우선 자신들이 애국자인양 하는 것입니다. 국민은 평소에는 정부의 정책에 불만을 가질지라도 외부의 적이 생기면 정부가 마치 국민들을 위한 정부인 것처럼 생각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 때 정부는 애국심 운운하면서 자신들의 비리와 부패를 감추고 비판 세력에게 억압과 통제를 가합니다. 로힝야족에 대한 탄압에는 군부의 기득권을 확보하려는 영악한 계산이 깔렸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수치 여사의 입장은 난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침묵을 지키자니 국제적인 여론의 비판을 받아야 하고, 군부의 살상행위를 비판하자니 군부로부터 로힝야족을 편드는,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친일파적인 부류로 몰려 겨우 이룬 민주화의 작은 싹마저 다시 없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 큰 문제는 경제적으로 궁핍해지면 사람들은 누군가 희생양을 원하는 집단심리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논리적이고 객관적 사실에 입각한 것이 아닌 그냥 화풀이 대상을 찾는 것이 인간의 집단심리입니다. 미얀마 군부는 이런 현상을 철저하게 이용하고 있습니다. 미얀마 사태를 보면서 우리나라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이제 겨우 그 굴레에서 벗어나는 중이지만, 언제라도 우리 역시 미얀마처럼 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미얀마 사태를 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원한을 갖게 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습니다. 위안부 문제나 강제노역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는 일본처럼 우리 역시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 적은 없는지 자기 성찰을 해야 합니다. 그런 자기 성찰이 충분하지 않을 때 로힝야족처럼 부모세대의 잘못 때문에 애꿎은 후손들이 피해를 당해야 하는 비극적인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늘 깨어 기도하라는 주님의 말씀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깊은 인식을 할 필요가 있음을 미얀마 사태를 통해 생각하게 됩니다. 아무런 역사 의식이 없이 살면 결국 영악한 자들에게 농락당하고 이용당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기나긴 세월에 겨우 마침표를 찍은 우리 입장에서는 미얀마 사태가 남의 일이 아닙니다. 또, 미얀마 불교를 보면서 종교는 아편인가 하는 마르크스의 물음이 아직도 뼈아픈 질문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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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8-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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