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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4>십계명과 사회교리<6>교회

사회교리 가르침, 더불어 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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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 여행을 하다 보면 성당 순례를 빼놓고는 거의 볼 게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스도교 문화가 강하게 남아 있는 유럽은 하느님 창조물의 결과인 자연경관의 빼어남보다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과 인간의 인공적 구조물이 어우러진 곳이다.

 사물에 깃든 그리스도교 신앙
 유학 시절, 로마로 성지순례나 여행을 오는 사람들을 가끔 만난 적이 있었다. 그들에게 로마 안내를 하다 보면 주로 찾아가는 곳이 성당이었다. 대부분 가톨릭 신자였기에 별 불만이 없었지만 가끔 신자가 아닌 분들도 있었다. 그중 신자가 아닌 지인이 불평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신부님, 로마에는 성당 아니면 갈 곳이 없나요? 저는 신자도 아닌걸요." 나는 "로마에는 성당 빼고는 더는 가 볼 만한 곳이 없다"고 대답했다. 주요 관광 명소도 대부분 성당이었고,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가더라도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받지 않은 작품이 거의 없었다. 중세 사람들은 자신들의 눈높이에서 미술 작품들을 창작했다. 라파엘로나 미켈란젤로, 수많은 중세 미술가들이 그러했다. 그들은 자신의 종교관과 신앙적 체험 안에서 자신의 작품에 정신을 투영했고 예술혼으로 승화시켰다.
 
 유학 시절, 어머니께서 아들 신부를 보러 오셔 성 베드로 대성당 순례를 하신 적이 있다. 머물던 수도원에서 식사하던 중 이탈리아인 노사제께서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무엇이었느냐?"고 어머니께 물으셨다. 어머니는 뜻밖에도 "글쎄요, 잘 모르겠지만 성당 중앙의 비둘기 모습이 가장 마음에 와 닿네요"라고 답하셨다.
 
 어머니는 성당의 규모나 미술 작품의 화려함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셨고, 스테인드글라스의 비둘기 모습에서 살아 계신 하느님의 존재를 느끼신 것 같았다. 인간의 인공적인 미술품 속에 녹아든 작가의 노고와 그리스도교적 신앙의 모습을 찾아내신 것이다. 평생을 평범하게 신앙으로 살아오신 어머니께서는 어떤 위대한 미술 평론가보다 더 아름답고 훌륭한 소감을 말씀하셨다. 사제인 나 역시 처음 유학을 와서 대성당 안에 자리하고 있는 예술 작품들의 화려함과 웅장함에 마음을 뺏겼었는데, 어머니는 사제인 나보다 더 나은 신앙인이셨다. 성당 안에 자리한 미술 작품 속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신 것이다.
 
 교회, 하느님께서 인간과 머무는 곳
 초기 그리스도교 시절부터 교회는 신자를 교육할 목적으로 성당 내에 수많은 벽화를 그려 장식했다. 예술적인 차원이 아니라 가톨릭교회의 교리를 교육할 목적이었다. 작품 대부분은 성경의 여러 이야기나 성인들의 삶을 주제로 하고 있는데, 일종의 시청각 교육이었다.
 
 문자를 아는 이들은 소수 지배계층이었고 대중은 그러지 못했다. 따라서 교회는 대중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심어주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미술 작품과 음악을 사용했다. 르네상스 시대 이전까지 미술, 음악, 건축 등 대부분의 중세 예술 작품은 이러한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화려하게 성전을 꾸미는 것이 단순히 외적인 부분만 아니라 개개인의 영적인 차원까지도 배려한 꼼꼼한 조치였다.
 
 오늘날처럼 교회 밖에서도 즐길 거리가 많은 사회 안에서는 교회라는 공간적 장소가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교회 공동체는 오늘날에도 꼭 필요한 곳이다. 한 교회 안에서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형제 자매들이 모여 기도하고, 미사를 봉헌하며, 공동체의 사랑을 나누는 것이 오늘날에도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성적 차원의 필요성은 오늘날에도 교회가 세상 안에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과 깊이 연관되어 나타난다.
 
 인간은 모든 것을 영적인 것과 세상적인 것으로 분리시킨 채 살아갈 수 없으며,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지니며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따라서 인간은 교회 안에서 하느님의 가르침을 통해 영적인 것과 세상의 것들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얻는다.
 
 교회는 하느님께서 인간과 함께 머무시는 구체적인 곳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교회는 추상적이거나 영적인 차원을 넘어서 인간 세상과 역사의 구체적인 상황 안에 함께 존재하는 곳이다. 따라서 인간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만나고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협력하도록 부름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60항 참조).
 
 교회는 하느님과 인간이 함께하는 곳이다. 따라서 우리 신앙인은 세상 안에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교회의 사회적인 가르침에 귀를 기울일 자세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사회교리가 우리 인간 사회를 더욱 풍요롭고 충만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간추린 사회교리」 62항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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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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