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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천주교와 이웃 종교] (15) 가톨릭 신자가 ‘전생’이 담긴 표현을 써도 되나요

인간의 삶, 하느님 선물로 단 한 번 주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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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신자로서 불교의 좌선 체험을 해도 되나요

불교의 좌선은 마음의 고요함을 추구하고 자기를 깊이 성찰하며 자아를 버리기 위한 목적이 있다. 고요한 환경에서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고르며 정신을 통일해서 아주 맑아진 심경에 도달하는 경험을 가톨릭교회의 묵상이나 관상 생활에 도입하려는 시도가 이미 행해지고 있다.

본디 좌선은 불교의 깨달음에 이르고자 하는 종교 행위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계속되는 좌선만으로’ 하느님과의 일치에 이를 수는 없다. 그런데 일상생활에서 심리적 정신적 활력을 주려는 보조 수단으로 그리고 불교 전통에 감추어진 ‘말씀의 씨앗’을 발견하고 그것을 소중히 여기는 영성 교류 차원에서 좌선을 활용하는 것은 가능하다. 이 경우에도 현대의 뉴에이지 사상이나 종교 혼합주의에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 깊게 식별할 필요가 있다.



가톨릭 신자를 위해 49재를 거행해도 되나요

불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죽은 사람의 영혼은 대개 새로운 몸을 받아 환생하기 전까지 저승에서 49일 동안을 머무른다. 그때 그는 7일마다 저승의 왕들에게서 자신의 선행과 악행에 대한 심판을 받는다. 그 심판을 통과하면 그는 조건에 맞는 곳으로 환생할 수 있다. 심판을 통과하지 못한 영혼은 다음 7일째 되는 날 다시 심판을 받게 된다. 그러다가 최종 심판을 받고 누구나가 환생하게 되는 날이 49일째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불자들은 죽은 사람이 저승에서 짧게 머물고 더 좋은 조건에서 탄생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7일에 한 번씩 재(齋)를 지낸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48일째 되는 날 49재를 한 번만 지낸다. 49일째 되는 날이면 이미 죽은 사람은 다음 생으로 환생해 직접적인 인연이 끊긴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49재는 불교의 윤회 사상을 바탕으로 한 장례 예식이므로 그리스도교 신자가 이러한 49재를 거행하거나 49일째에 위령 미사를 봉헌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전생에 무슨 업보를 쌓아서라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요

‘전생에 무슨 업보를 쌓아서’ 또는 ‘내가 다시 태어나면…’이라는 말에서 우리 문화에 스며 있는 불교의 윤회와 업(業)에 대한 가르침이 무의식 중에 표출된다.

전생(전세)이란 지금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의 생애로 현세와 내세와 함께 불교의 삼세(三世)를 이룬다.

불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인간 영혼은 현생의 행위에 상응하는 다양한 모습의 생명체로 다양한 세계에 다시 태어난다. 따라서 현재의 삶의 조건은 과거의 삶, 곧 전생에서 자신이 행한 것의 결과인 업보이기에, 현재의 삶에서 느끼는 행복과 고통은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이다.

그러나 가톨릭교회는 하느님의 선물인 개인의 삶이 단 한 번 주어지며 인간이 죽음으로 지상의 생을 마친다고 할지라도 사라지지 않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얻으며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모든 이가 부활하리라는 희망을 가르친다.

따라서 가톨릭 신자는 불교의 핵심 교리를 내포하는 ‘전생에 무슨 업보를 쌓아서’ 또는 ‘내가 다시 태어나도’라는 말을 삼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난은 주교회의 교회 일치와 종교 간 대화 위원회가 편찬한 「한국 천주교와 이웃 종교」를 정리한 것입니다. 저작권은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 있습니다.


정리= 리길재 기자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9-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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