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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1)살 만큼 살았지만 더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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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을 앞에 두고 우리가 느끼는 불안과 우울의 감정은 남은 삶을 더 열심히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영적인 메시지가 될 수 있다. CNS 자료사진



평탄한 인생은 없다. 곳곳에 산과 강, 늪과 가시밭길이 있다.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영성 생활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고난의 산을 하나씩 넘을 때마다 우리는 성숙하고 성장한다. 새롭게 연재를 시작하는 ‘박현민 베드로 신부의 별별 이야기’는 삶의 자리에서 마주한 어려움을 신앙의 힘으로 극복하고 영적 풍요로움으로 이끌어 주는 따뜻한 길잡이가 돼 줄 것이다.





한 노부부가 찾아왔다. 아내는 남편이 요즘 우울하고 짜증이 많아 자신도 힘들고 주위 사람들도 힘들게 하니 상담을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편은 마지못해 끌려온 표정이었다. 별문제도 아닌데 요란을 떨고 바쁜 신부님을 귀찮게 해드리느냐면서 아내에게 핀잔을 주었다. 하지만 아내의 설득을 못 이기는 척 이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신부님, 제가 요즘 웃음이 없습니다. 4년 전에 전립선암 시술을 했는데, 시술은 잘 되었지만 PSA(전립선암 종양 표지자)가 정상적으로 돌아오지 않아 걱정입니다. 수술한 의사는 전립선암은 착한 암이라 수술하지 않고 그대로 놔둬도 앞으로 10년에서 20년은 더 살 수 있는 병이니 걱정할 게 없다고 합니다. 만일 그 사이에 제가 죽는다면 이 병으로 죽는 것이 아니라 다른 병으로 죽는 것이니 불안할 이유가 없다고는 하네요. 하지만 저는 지금 너무 우울합니다. 아무리 좋은 경치를 보아도, ‘저 산과 초목들은 10년 아니 100년이 지나도 살아있을 텐데, 나는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이 세상을 떠나는구나!’라는 생각에 아무 즐거움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요즘 4~5시간을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있지만, 이 우울함이 없어지질 않습니다. 심지어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모이는 클럽에 가서 춤을 춰 보기도 하지만 소용이 없더라고요. 지금껏 열심히 살아서 아이들을 다 잘 키워내고 이제 먹고살 만하니까 이런 병에 걸려 너무 억울하고 한이 됩니다…. 왜 이렇게 살고 싶은지 모르겠습니다. 70평생을 살아왔으니 이제 살 만큼 살았는데 말입니다.”

삶에 대한 집착과 욕심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일 것이다. 어찌 남은 삶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이 분만 느끼는 감정이겠는가? 만일 의사로부터 몇 달 혹은 몇 주밖에 살 수 없다는 진단을 받게 되면, 나의 삶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과연 자신의 남은 삶을 더 소중하고 감사하게 느끼며 죽음을 잘 준비할 수 있을까? 아니면 얼마 남지 않은 삶에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며 고통과 무기력 속에서 살아가게 될까? 이 형제님처럼 당장 죽지는 않지만 죽음을 예견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우울하고 무기력해질 수 있다. 죽음을 초월하여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힘은 과연 어디서 오는 것일까 궁금해진다.

우리는 죽음에 대한 불안이 삶의 의미로 극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인생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적어도 나는 평범하게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낳아 열심히 양육했으며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지금껏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 형제님 역시 이러한 삶을 살아오셨다. 하지만 그 안에서 대단한 삶의 의미가 느껴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뭔가 내 인생이 그럴듯해야 그나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신 것은 아닐까? 세상에 크게 이바지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남을 위해 대단한 봉사와 사랑의 삶을 살아온 것도 아니니 말이다.

삶의 의미는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닐 것이다. 하느님 안에서 하루하루를 기쁘고 감사하게 살아가며 조그만 사랑을 실천한 그 자체만으로도 신앙인에게는 중요한 의미가 주어진다. 마더 데레사 수녀님은 생전에 “우리는 위대한 사랑을 할 수는 없지만, 작은 사랑을 위대하게 할 수는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수녀님의 삶의 의미는 인간적으로는 보잘것없이 보여도 하느님께서는 위대하게 보시는 작은 사랑의 삶이었다. 하느님을 모시고 열심히 살아온 형제님이 자신의 삶에서 평범한 사랑의 의미를 발견할 수만 있다면 좀 더 일상의 기쁨을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아마 죽음을 앞에 두고 우리가 느끼는 불안과 우울의 감정은 남은 삶을 더 열심히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영적인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 박현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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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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