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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2) 일할 수도 없고 그만둘 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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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직장인들이 워라밸을 이루지 못하고 힘들어한다. 이와 함께 공동체 안에서 진정으로 마음을 나누고 소통하는 일이 절심함을 느끼게 된다. CNS 자료사진



점심을 먹고 나른한 오후, 20대 후반의 한 청년이 맥이 빠진 모습으로 상담실을 찾아왔다. 그는 몇 개월 전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업무가 과중하고 자기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죽을 만큼 힘들다고 하였다. 회사가 대기업이지만 업무 특성상 노동법을 지키지 않고 일을 시키는 경우가 많은 모양이었다. 잔업과 야근이 많고 휴일에도 급하게 호출하면 달려가야 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워라밸(work-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이 깨져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걸 누구에게 말하거나 회사에 항의할 수도 없었다. 다른 동료들은 묵묵히 조직에 충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내기가 회사를 상대로 문제를 제기할 처지도 못되기 때문이었다. 주위에 이런 어려움을 호소하면 여지없이 “너는 인내심이 부족하다” “너무 개인주의인 것 같다” “애사심이 없다” “감사할 줄 모른다” “돈을 날로 벌려고 그러느냐?” 등의 비난이 쏟아진다. 아니면 “끝까지 인내하면 좋은 날이 올 것이다” “누구나 다 처음엔 힘든 법이다” “자신보다는 조직을 우선으로 생각해야 성공할 수 있다” “너 같은 입장에서 일하고 싶은 취준생들을 생각하면 그런 말이 나오느냐?”는 식으로 훈장질(?)을 받게 된다.

우리는 삶에서 문제(problem)가 없기를 바라며 문제가 없는 삶이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인생은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은 문제가 없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에 대해 물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바로 자신이 문제 그 자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가 어렵지만 말이다.

이렇듯 우리의 삶은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는 종종 이 문제(problem)를 과제(task)로 바꾸어 표현해 본다. 문제가 없는 사람은 없다는 말보다 누구나 삶의 과제가 있다는 의미로 이해하자는 것이다. 문제의 해결은 우리를 정상으로 돌아오게 하지만, 과제의 수행은 우리를 성장시키고 발전시킨다. 문제는 해결되어야 비로소 정상이지만, 과제는 그 결과와 상관없이 과제를 이행하는 모든 과정에서 의미가 발생한다.

이 청년이 만일 직장에서 느끼는 스트레스를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만일, 참고 일을 계속한다면 정신적 건강은 물론 육체적 질병을 얻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직장을 그만둔다면 곧 후회할 것이 명백하기에 본인도 스스로 결정을 못 했던 것이다. 청년은 따라서 자신의 문제에 대한 어떤 결정을 내려도 자신에게는 후회와 미련이 남을 수밖에 없는 선택이 된다. 여기에 딜레마가 발생하고 청년이 느끼는 고통의 핵심이 있다.

하지만 자신의 고통을 문제가 아닌 과제로 바꾸어 생각할 수만 있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의 고통은 사실 안 겪어도 될 고통이기에 긍정적 의미를 찾기가 어렵다. 하지만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의 고통은 자기 성장과 자아실현이라는 긍정적 목표와 방향성이 있기에 그 고통을 수용하고 이해하며 상대적으로 긍정적 의미를 찾기가 수월하다.

청년은 자신이 겪는 고통의 원인이 과도한 직무로 발생하는 스트레스가 아니라 동료들과의 친밀감 부족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회사 안에서 마음을 나누고 소통할 수 있는 친밀한 동료 한 사람만이라도 있었다면 아무리 일이 고되다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고통스럽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제 직무 스트레스는 더 이상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친밀한 인간관계 회복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경보신호였다. 공동체 안에서 진정으로 마음을 나누고 소통하는 친교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는 개인적인 삶의 과제이며 동시에 신앙인의 의무이다. 삶에서 고통이 따를 때 우리는 그 고통으로부터 잠시 떨어져 나에게 주어진 삶의 과제를 살펴보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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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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