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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은 무아지경이나 황홀경이 아닙니다”

[토마스 머튼의 영성 배우기] 29. 관상에 대한 새로운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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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튼의 초기 작품과 후기 작품에 나타난 관상 체험을 묘사하기 위한 용어와 관상에 대한 이해는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이를 분석하는 것은 그가 사용한 관상 체험에 대한 용어들을 명료화하고, 그가 어떻게 관상에 대한 깊은 체험을 현대인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는지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분석은 또한 관상에 관한 머튼의 새로운 관점이 어떻게 동양의 관상 전통들과 관련되어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상세하게 다루게 될 그리스도 수도승들과 다른 종교적 전통의 관상가들 사이의 ‘관상 대화’에 대한 이해에 도움을 줄 것이다.



관상 체험에 관련된 용어의 명료화

관상에 대한 체험을 묘사하기 위해 머튼은 영적 체험, 종교 체험, 신비 체험, 초월 체험, 내적 체험, 해탈의 체험 그리고 깨어남의 체험 등 다양한 용어들을 사용하였다. 관상에 대한 그의 이해가 수도 생활의 과정 동안 변화되듯이, 그가 관상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사용했던 용어들도 비그리스도교 종교들과의 만남을 통해 극적으로 변화되었다. 관상에 관한 초기의 저술에서 사용했던 머튼의 용어들이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신비주의의 문헌에 뿌리를 두고 있던 반면, 후기에는 그리스도교의 신비 체험을 묘사하기 위해 동시대적이고 비그리스도교적인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관상’(Contemplation)과 ‘신비주의’(Mysticism)라는 두 용어를 설명하기 위해, 머튼은 그리스도교 영성의 전통 역사 안에서 이 용어들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연구하였다. 그는 “그리스도교 교부들에게 ‘신비 신학’과 ‘관상’은 같은 것을 설명하기 위한 두 가지 방법이었습니다. 두 용어 모두 체험에 의해 하느님의 감추어진 지식을 의미하며, ‘어둠 안에서’ 신적인 빛에 의한 영혼의 ‘수동적’ 조명을 의미합니다”라고 주장하였다. 비록 두 용어 모두 직접적인 하느님 체험을 언급한다 할지라도 그는 신비 신학이 십자가의 성 요한이나 아빌라의 성녀 대 데레사와 같은 개인적인 신비가들을 연구하는 것이 되어 갔고, 심지어는 「가르멜의 산길」이나 「완덕의 길」과 같은 그들의 저서들은 영적인 삶의 단계를 상승하게 하는 기술을 위한 안내서가 되었다고 평했다.

머튼에 따르면, 18세기에 신비 신학은 탁월한 신비가들이나 비정상적인 사례들을 연구하는 학문이 되어 갔으며, 따라서 관상에 관한 생각은 “모호해지거나 잊혔으며 신비주의는 보통의 사람들은 반드시 피해야 하며, 심지어 성인들에게도 필요하지 않은 경험이기에 드물거나 의심스러운 것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이유로, 머튼은 그의 후기 저술에서 ‘신비주의’라는 표현보다는 ‘관상’이라는 용어를 선호했으며, 어떤 밀교적이거나 비정상적인 말을 하여 감명을 주는 것을 피했다. 그는 “관상은 무아지경이나 황홀경이 아닙니다. 이것은 광포한 힘에 의해 ‘점령된’ 감각적인 광신도 아니요, 신비적 광란에 의해 자유 안으로 휩쓸려 들어가는 것도 아닙니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교도의 신비적 종파들과 원시적이고 밀교적 전례들이 주는 신비주의에 대한 부정적 암시는 머튼이 이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꺼리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두 용어의 구별을 넘어 머튼은 현대는 ‘신비주의’와 ‘관상’ 모두 “관상의 ‘일상적인’ 형태들에 대한 전통적인 (관상에 대한) 강조를 쇄신하기 위해” 언급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여성 신학자 앤 카르(Anne E. Carr)는 “보통의 일상적인 독자를 위한 관상 전통에 대한 머튼의 새로운 발견은 권위 있는 믿음을 향한 새로운 의미와 영적인 깊이를 가져다주었다. 그가 신앙 안에서 하느님에 대한 체험의 가능성에 대해서 생생히 적었기 때문에 하느님과의 일치 체험은 영적 모험의 가능성이 되었다”고 평가한다.

머튼은 관상을 우리 삶의 본질이며, 사랑이신 하느님의 신비 안에 참여하는 관상 체험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열려 있다는 것을 재발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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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01-15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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