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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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32)수도 전통 안에서의 되새김②

보는 게 아니라 씹어 먹어야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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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성준 신부



수도 전통 안에서 있었던 묵상으로서의 되새김 수행은 베네딕도 성인 이후에도 계속 강조되었다. 그래서 12세기의 안셀모 성인은 “독서자는 자기의 구원자이신 분의 선(善)을 맛보아야 하고, 그분의 말씀을 되씹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는 또한 되새김의 과정을 다음과 같이 아주 자세히 묘사하였다. “당신은 그분 말씀의 벌집을 씹고, 그 맛을 빨아들여라. 그것은 그 어떤 수액보다도 더 달콤하다.… 생각으로 씹고 이해로써 빨아들이고 사랑과 환희로써 들이켜라!” 그 어떤 수액보다도 더 달콤한 말씀의 벌집을 씹고 빨아들이라는 권고이다. 베르나르도 성인 역시 수도자들이 순결한 반추 동물과 같이 말씀을 끊임없이 되뇌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우리가 성경을 달콤하게 반추함으로써 우리의 내장은 채워지게 된다.”

이렇게 중세까지 수도 전통 안에 묵상의 과정으로서의 되새김 수행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다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큰 분기점인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묵상 방법들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사실 어휘에서 볼 수 있듯이 고대나 중세까지만 해도 ‘묵상’(meditatio)과 ‘되새김’(ruminatio)은 별 구분 없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중세 말 스콜라 학문의 영향으로 인해 묵상에 이성적이고 추리적인 요소들이 많이 첨가되면서 점점 더 묵상과 되새김 수행 사이에 균열이 생기게 되었다. 이제 묵상은 단순히 성경 말씀을 되새김하는 것이 아니라 더 지성적인 의미들을 내포하게 되었다. 그래서 본래의 묵상의 개념이었던 되새김은 이제 ‘생각하는 것’(cogitatio), ‘고려하는 것’(consideratio), ‘연구하는 것’(studium)과 같은 의미들로 대체되었다.

더욱이 근세로 넘어오는 큰 분기점인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더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묵상 방법들이 널리 퍼지게 되면서 점점 더 묵상과 되새김이 분리되어 버렸고, 그 이후에 되새김 수행은 거의 잊히게 되었다.

이로써 오랫동안 수도 전통 안에서 단순하게 그리고 독특하게 행해져 오던 성경 묵상에 대한 구체적인 수단인 되새김 수행이 잊히게 되었는데, 이점은 수도승 영성의 크나큰 불행 중의 하나임을 필자는 매우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 수도 전통을 따르고 있는 수도자들마저도 그러한 방법이 무엇인지, 심지어 수도승 전통 안에서 그러한 방법이 있었는지조차도 모르는 기(奇)현상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수도자들은 끊임없이 성경 본문을 암송하고 반복하고 되씹으면서 헛된 세상의 가치에 휩쓸리지 말고 온갖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키어, 하느님의 말씀 안에 온전히 머물러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장 르끄레르 신부는 이러한 끊임없는 반복과 되새김 수행이 수도자들의 내적 생활을 훨씬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베네딕도 16세 교황은 수도자들의 이러한 독특한 묵상 방법인 되새김 수행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도 사막의 수도교부들처럼 말씀을 끊임없이 되뇌어야 함”을 강조하면서 ‘ruminating’(반추) 용어를 직접 사용하시기도 하였다.

장익 주교는 언제가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위원장으로 있을 때, 다음과 같이 의미 있는 말을 하였다. “성경은 안경을 쓰고 들여다보는 책이 아니라 씹어 먹어야 하는 책입니다. 그리고 여유 있는 사람이 하는 게 아닙니다. 유식해서 시간이 있어서 하는 게 아닙니다. 고대 채록자들 역시 생활이 바빴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구원을 찾았던 이들입니다.”



허성준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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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03-25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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