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20)말은 그렇게 해도 속에는 이런 뜻이… (하)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어머니는 자신을 속이고 딸이 집을 샀다는 사실이 자신을 무시한 행동이기에 이해할 수도 없고 용서할 수도 없다고 하였다. 딸은 어머니를 속이거나 무시하려는 의도는 절대 없었으며 오히려 어머니가 걱정할까 봐 배려하는 마음에서 말씀을 미리 못 드렸다고 하였다. 겉으로 보기엔 모녀지간에 일어날 수 있는 단순한 오해의 상황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 갈등이 일어난 배경을 알고 나니 서로의 대화 안에는 겉으로 드러난 의미와는 사뭇 다른 의미가 숨겨 있었다.

딸은 넉넉지 않은 형편에 생활비도 절약하고 태어날 아이들을 돌보아줄 어머니의 도움도 받을 겸 해서 집을 마련할 때까지만 친정에 얹혀살기로 하였다. 하지만 신혼생활을 친정집에서 시작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생활비도 절약하고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다는 점에서는 좋았지만 사소한 일에서도 어머니와 분리가 되지 않은 생활환경 탓에 어머니의 관심과 사랑은 오히려 간섭과 잔소리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반면 어머니는 외동딸이 결혼해서 독립하지 않고 함께 산다는 사실에서 정서적인 안정을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손주가 생긴 이후엔 더더욱 자신의 삶의 의미와 보람을 체험하고 있었다. 손주를 잘 키우는 것이 그동안 잘해주지 못한 딸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보상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딸을 뒷바라지해주었다. 그러던 중 딸이 자신 몰래 집을 구매했다는 소식을 듣고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게 된 것이다.

사실 어머니가 화를 냈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딸이 자신을 속이고 집을 샀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자신이 느끼고 있는 이 소소한 행복이 머지않아 깨져 나갈까 봐 두려운 마음이 든 것이 그 원인이었다. 지금까지 딸에게 희생했던 자신의 삶이 아무 의미나 보상도 받지 못한 채 허물어져 내릴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감정이 밀려오자 이상하리만큼 딸에 대한 미운 마음과 배신감이 밀려들기 시작하였다. 딸이 자신을 속이고 무시했다고 말하는 분노의 감정 안에는 사실 딸과 헤어지고 싶지 않은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그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딸에 대한 아쉬움과 서운함이 모두 엉겨 있었다.

하지만 딸은 어머니의 분노 이면에 숨은 이런 여러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무딘 사람은 아닌 듯했다. 딸은 어머니가 경제적으로 걱정하실까 봐 미리 상의 드리지 못했다면서 어머니를 달래고 있었다. 그 말 속에는 자신은 여전히 어머니의 편이며 어머니를 떠나지 않을 것이니 제발 마음의 안정을 취하시길 바라는 의미가 숨어 있었다. 어머니의 감정을 최대한 살피면서 마음을 푸실 수 있도록 안절부절못하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딸이 어머니의 드러난 분노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어머니는 화를 내고 있었지만 사실 그 마음 안에는 어린아이처럼 투정을 부리며 자신의 불안한 마음과 속상한 감정을 숨기고 싶은 어머니의 속마음을 이미 딸은 알고 있었다.

이처럼 이면교류는 마음속에 부끄러운 욕구와 감정을 숨기면서 명분을 유지한 채 사회적 관계를 맺으려는 의도로 사용된다. 하지만 이면교류는 가족과 같이 인격적 관계를 가져야 할 대상에게는 오히려 오해와 불신을 야기하고 진실한 만남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실제로 어머니는 딸과의 이면교류를 통해 자존심을 상하지 않은 상태에서 딸로부터 얻고 싶은 대답을 얻어내었다. 하지만 속에 숨어 있는 욕구와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소통이 아니었기 때문에 문제와 갈등은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다.

가족 안에서 발생하는 모든 갈등 유형은 대부분 이러한 이면교류에서 발생한다. 이런 이유로 성가정을 이루기 위해 가장 필요한 덕목을 하나 꼽으라면 나는 주저함 없이 ‘진실한 대화’라고 말하고 싶다.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0-04-16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3. 29

시편 85장 10절
정녕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에게는 구원이 가까우니, 우리 땅에 영광이 머무르리라.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