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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21)판단할 수 있는가 없는가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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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함께 사는 신부님들과 저녁 식사를 하는 중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 신부님이 자기 동창이 신학교 면접 볼 때 있었던 일이라고 하면서 한 가지 일화를 들려주었다. 그 동창이 신학교에 입학시험을 치른 후 면접을 볼 때의 일이다. 면접관 신부님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셨다. “자네는 어떻게 신학교를 오게 됐나?” 그러자 그 동창은 이렇게 대답했다. “안양에서 전철 타고 수원역으로 와서 수원역에서 ○○번 버스 타고 왔습니다.”

함께 식사하던 신부님들이 배꼽을 잡으며 박장대소를 하던 차에, 그 옆에 계신 신부님도 이에 질세라 한마디 거들었다. 자신도 신학교에서 어떤 교수 신부님의 질문에 잘못 대답을 해서 큰 곤욕을 치렀다는 이야기였다. 이 신부님이 어느 날 강의를 하시는 신부님의 말씀이 너무 자장가처럼 들려서 정신없이 졸고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교수 신부님이 졸고 있는 자신 앞으로 다가와서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언성을 높이면서) 자네 어젯밤에 도대체 뭐했나?” 그랬더니 깜짝 놀라 잠이 깬 신학생은 엉겁결에 눈을 껌뻑이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잠잤는데요!!!”

이 대답이 어찌나 웃기던지 교실은 그야말로 웃음바다로 변해버렸다. 하지만 이 상황이 웃기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 사람은 바로 질문을 던진 교수 신부님이었다. 자신의 말에 농을 섞어 말한 신학생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하셨던 것이다. 그날 이후로 이 신학생은 말 그대로 교수 신부님에게 찍혀서 신학교 생활이 고달팠다고 한다.

거의 이런 실수는 대화의 내용이 어떤 배경에서 생겨났는지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예를 들어 “잘~한다”는 말은 말 그대로 칭찬하고 격려하는 말일 수 있다. 하지만 어투나 음색이 비꼬는 듯하거나 잘못이나 실수를 한 상황에서 이 말을 듣게 된다면 오히려 반대의 의미가 된다. 면접 상황에서 어떻게 신학교를 왔느냐는 질문은 신학교에 뭐 타고 왔느냐란 질문이 아니라 어떤 동기로 신학교에 지원했느냐는 말이었다. 수업시간에 졸고 있었던 상황에서 어젯밤 뭐했느냐는 질문은 밤에 무슨 일을 했는지를 묻는 게 아니라 졸지 말라는 훈육의 말이었다.

우리는 종종 멀쩡한 상황에서 동문서답을 한다든지, 혹은 상황에 맞지 않은 의사소통으로 주변을 당황하게 하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대부분 상대의 말에 대한 배경과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인간의 말은 그 말이 나오게 된 배경과 상황을 충분히 알고 있어야만 비로소 온전히 이해되는 속성이 있다. 즉 말의 진정한 의미는 그 말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의 배경과 상황의 상호작용 안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면교류는 말 자체보다는 그 말이 어떤 배경과 상황에서 발생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 이해가 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이처럼 진정한 소통은 대화가 발생한 배경과 상황에 대한 깊은 통찰이 전제되어야만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런 현상은 굳이 의사소통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의 모든 행동도 결국 같은 맥락을 지니고 있다. 즉 진정으로 한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행동이 발생한 배경과 상황을 충분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마태 7,1)는 예수님의 말씀은 단순히 남을 판단하지 말라는 정언적 말씀이 아니라 좀 더 다른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계속>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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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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