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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규 수녀의 사랑의 발걸음] 1. 카자흐스탄에서 온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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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근교 생드니는 ‘이민자들의 도시’다. 생드니교구는 세계인이 정착하는 지역이라 ‘무지개 교구’라 불린다. 프랑스 성요한사도수녀회 장현규(마리스텔라) 수녀는 18년째 생드니 오베흐빌리에 라호즈레병원 입원 환자들을 만나고 있다. 마르세유수녀원에서 병원까지 거리는 약 150㎞. 우리로 치면 서울에서 대전 거리를 오직 환자들을 만나기 위해 오간다. 본지는 「그대들을 사랑합니다」 저자인 장 수녀의 ‘사랑의 발걸음’이 담긴 일화들을 연재한다. 그의 사도직이야말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늘 강조하는 이방인과 난민을 향한 환대의 표본 아닐까.



두 환자가 있는 병실. 차분한 모습의 여성 환자에게 다가갔다. 이름은 마리아. 환갑 정도는 돼 보이는 나이다. ‘에고, 딱해라.’ 대화를 나눠보니 아픈 사연이 있는 ‘난민’이 아닌가!

“10년 전 남편과 이혼하고, 어린 아들만 데리고 프랑스에 왔어요.” 고국 카자흐스탄을 떠나 프랑스 국경을 넘어 이곳 오베흐빌리에 난민 신분으로 자리 잡고 살아온 지가 벌써 10년이 넘었다고 한다.

“이곳에 정착한 지도 오래됐지만, 아직 정부에서 체류 허가를 해주지 않네요.” 마리아씨는 프랑스 당국이 허가하는 체류증을 받지 못해 어린 아들도 학교에서 정규 교육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복받치는 뜨거운 눈물이 그녀의 양볼을 타고 이내 주룩주룩 흘러내린다. 유럽에서도 흔히 마주할 수 있는 오늘날 난민의 현실이다.

험난한 삶을 어린 아들과 살아가는 여인 앞에서 나의 눈시울도 뜨거워졌다. 세월은 하염없이 흘러만 가는데, 얼마나 이곳에서 살아야만 체류 허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인가?

동방 교회를 다니는 착실한 신자인 마리아씨는 처음 보는 내 앞에서 눈물을 계속 흘린다. 당장 뭐라고 위로라도 해야 하는데, 고통의 눈물바다에 젖어 있는 이 여인 앞에서 나는 그만 말문이 막혔다. 여인의 질환은 심장병. 그간의 험난한 삶으로 입은 병이었다. “아들도 일하나요?” “정규직은 아니고, 한 달, 두 달씩만 일하는 임시직으로 일해요.”

짐작으로 식당 또는 건축 현장에서 일하나 보다. ‘난민 신분이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고 걱정만 들었다. 이야기하는 내내 얼굴은 온통 세수하듯 눈물을 흘릴 정도로 마리아씨는 몸과 마음이 아프다. 이들의 집은 도시에 있는 허름한 호텔의 작은 방이란다.

이민자, 난민이 대부분인 이 도시의 호텔은 결코 파리의 호텔과 같은 수준이 아니다. 이렇게 세상 뒷면에서 아픔과 눈물을 삼키며 살아가는 이들 중 한 명인 카자흐스탄에서 온 마리아씨와 어린 아들의 심경이 자꾸만 눈에 밟힐 것 같았다. 몸마저 병든 채 삭막한 타향살이의 쓰라린 외로움을 부둥켜안고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아닌가.

얼른 가방 안에 갖고 있던 기적의 메달과 작은 십자가를 아시아에서 온 이 동방 교회 신자에게 건넸다. 그런데 고맙게도 마리아씨는 자신의 목걸이에 십자가를 함께 걸겠단다. 내 손길로 그녀의 목걸이에 십자가가 걸렸다. 그녀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떠올랐다.

마리아씨가 예수님의 십자가에 자신의 고통을 일치시켜 위로와 힘을 얻길 바랐다. 수녀로서 내가 줄 수 있는 하느님의 힘이다. 더불어 아픔을 견뎌낼 수 있다는 용기와 희망을 품게 되길. 순간의 위로가 큰 힘으로 작용한 것일까. 한결 나아진 표정으로 십자가를 바라보는 마리아씨에게 “당신의 어려운 생활에 절대 절망하지 마세요. 하느님께 믿음, 희망, 사랑을 굳게 가지세요. 예수님께서도 십자가 위에서 혹독한 고통을 겪고 돌아가셨지만, 3일 만에 부활하셨듯이 말이에요.” “제 마음이 그나마 새로워지는 것 같다”는 답이 돌아온다.

사랑 그 자체이시고, 지극히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이 여인과 어린 아들을 당신의 따뜻하신 품 안에 안아주시고, 모든 아픔이 사라지길 기도한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장현규 수녀(프랑스 성요한사도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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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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