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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민 신부의 별별이야기] (24)비가 온 후 땅은 더 단단해진다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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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은 상담은 의지가 약한 사람이나 받는 것이라는 선입견과 편견을 가질 수 있다. 이들은 스스로 힘을 내고 노력해 나가면 극복해 나가지 못할 어려움은 없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만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면 그것은 상담을 통해서도 해결할 수 없다는 믿음도 함께 가지고 있다. 따라서 심리상담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문제를 타인의 도움으로 해결해 보겠다는 의지박약한 사람들 혹은 의존적인 사람들이나 받는 수치스러운 과정으로 생각하기 쉽다.

십여 년 전 일이다. 외국에서 학위를 받고 국내에 들어와 지방 대학에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한 지인이 새벽 1시경 갑자기 전화를 걸어왔다. 다급하고 절망적인 목소리로 “살려달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조금만 안정을 찾고 천천히 상황을 설명해 보라”는 내 목소리는 비명에 가까운 절규에 묻혀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심지어 “자신이 무릎을 꿇고 빌고 있으니 살려달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곧바로 응급실로 가시라”는 말도 소용이 없었다. 이미 혼이 나가 있는 목소리에서 저항할 수 없는 공포와 불안으로 온몸이 얼어붙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곧바로 응급실로 가도록 조치를 취한 후 며칠 뒤 정신과 병상을 찾게 되었다.

그는 평소에 우울증이란 의지가 약하고 소심하며 자신이 없는 사람들이나 걸리는 병이라고 생각했다. 평소 우울증으로 학업을 중단하는 학생들을 사회의 낙오자로 간주하면서 정신력을 키우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쳐왔다. 가정에서는 정신을 강하게 훈련시킨다는 명목하에 아이들에게 엄격하고 매정한 모습의 아버지로 살아왔다. 안 좋은 일을 겪어 마음이 속상한 아내의 모습을 보면 감정을 알아주기보다는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전략을 사용할지를 가르쳤다. 인생은 자신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며 감정적으로 약해지면 결국 사회에 패배자로 남게 된다는 강한 신념으로 살아오신 분이었다.

정신과 병동에서 만난 그는 과거에 기억되는 용모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총명하게 반짝이는 눈동자와 자신감 넘치는 외모는 온데간데없고, 풀이 죽어 축 늘어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약물의 도움으로 일단 안정을 찾은 모습이었지만 지난 며칠간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음을 알 수 있었다. 병원에서는 급성으로 찾아온 공황증상으로 간단하게 말하면 평소 정신적 스트레스가 지속적으로 쌓이다 한 번에 터진 것이라는 설명을 해주었다. 그가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자신에게 이런 정신적 증상이 발생했다는 사실이었다. 그 누구보다 강인한 정신의 소유자이며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나갔던 자신이 이런 질환을 얻게 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몇 년이 지난 후 교수님은 나에게 이런 고백을 하였다. “신부님, 처음에 하느님께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신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하느님을 원망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에 크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병을 통해 회개의 기회를 허락하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일 이 병이 없었다면 저는 여전히 자신의 노력으로만 모든 정신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교만으로 평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저는 이 병을 통해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삶의 모든 순간이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고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정신적 고통과 질환 역시 우리가 하느님과 소통하는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계속>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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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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