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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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말씀은 침묵이며, 침묵은 하느님 사랑의 표현

[토마스 머튼의 영성 배우기] 45. 토마스 머튼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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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하삼두 스테파노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내적 고독과 침묵을 방해하는 많은 것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TV, 인터넷, 서적 등 말과 정보, 영상의 홍수 속에서 현대인들은 오히려 고요히 있는 것을 불안해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아침에 일어나면 습관처럼 TV를 켜고 자기 전에는 유튜브를 켜 놓고 잔다고 한다.

외부에서 들려오는 무수한 소음은 자신의 자아와 직면하지 않고 회피할 기회를 제공하며, 내부에서 솟아나는 무수한 사람과 일에 대한 속 시끄러운 소리들은 하느님의 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다. 토마스 머튼은 이러한 우리 시대의 많은 문제는 ‘침묵하기보다 오히려 분석하려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머튼은 영성생활에서 고독과 더불어 침묵을 매우 강조했다. 그 이유는 바로 ‘하느님의 침묵과 하나’ 되기 위해서다. “하느님의 말씀은 침묵이다.” 하느님의 침묵은 하느님 사랑의 표현이다. 사랑하기에 침묵으로 기다려 주고 지켜봐 주는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의 침묵에 참여함으로써 우리 역시 진정한 하느님의 사랑을 배우게 된다. 또한, 세상 만물로부터 떼어 놓는 외적 침묵은 자신을 하느님께 더 집중하게 하며 자신을 거짓 자아로부터 떼어 놓는 내적 침묵은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한다.



침묵은 하느님께 봉헌하는 일종의 기도

따라서 침묵은 외적인 말과 내면의 소리들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일종의 기도이다. 침묵함으로써 우리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게 되고 우리 자신 안에서 그분의 현존을 발견하게 된다. 머튼은 이렇게 말한다. “나의 삶은 듣는 것이고 그분이 말씀하신다. 나의 구원은 듣고 대답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나의 삶은 침묵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나의 침묵이 곧 나의 구원이다.”

침묵은 말 없는 창조물과의 영적 친교요 휴식이기도 하다. 머튼은 「인간은 섬이 아니다」에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우리 혀가 침묵을 지키며 고독으로 들어간다면 말 없는 존재들의 침묵이 그들의 휴식을 우리와 나눌 것이다.”

머튼에게 있어서 침묵은 단순한 혀의 침묵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외적인 혀의 침묵과 눈의 침묵, 내적인 상상력의 침묵과 갈망의 침묵을 강조한다. 특히 그는 하느님께 대한 위로를 갈망하지 말고 오히려 사랑하기를 갈망하라고 강조하며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소중히 여기고 위로해 주기를 갈망하지 마라. 무엇보다도 그분을 사랑하기를 갈망하라. 다른 이들이 하느님 안에서 위로를 발견하게 하려고 마음 졸이며 갈망하지 말고 오히려 그들이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돕고자 갈망하라.”(「인간은 섬이 아니다」) 이러한 외적 내적 침묵은 우리와 하느님 사이의 장벽을 무너뜨린다. 그리고 이 침묵은 우리를 하느님 안에 살게 한다.

그렇다면 영적인 측면에서 말과 침묵 사이에는 어떤 관련성이 있을까? 창조주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하느님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언어를 주셨다. 요한복음에서도 ‘말씀(Logos)’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고 전하고 있다. 말씀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받게 된다. 이 믿음은 들음에 기초를 둔다. 머튼은 ‘믿음은 들음으로써 생기고 우리의 혀는 다른 이들에게 천국을 여는 열쇠’라고 묘사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이런 의문이 생긴다. 우리의 말로써 선포되는 복음이 천국의 열쇠라면 앞에서 머튼이 강조한 침묵과는 상치되지 않는가? 말씀을 선포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은 오히려 제자로서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지 않는 직무유기인가?



자신의 언어 복음화하는 내적 정화 과정

그렇지 않다. 머튼이 말하는 침묵은 자신의 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제대로 선포하기 위해 자신의 언어를 복음화하는 내적 정화의 과정인 것이다. 머튼은 혀가 다른 이들에게 천국을 여는 열쇠라고 묘사한 다음, 바로 이어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신랑으로 오실 때에는 그분이 오고 계신다는 것, 우리가 그분을 만나러 가야 한다는 말 외에는 어떤 말도 필요하지 않다… 그다음에 우리는 고독 속에서 그분을 발견하러 나간다. 그곳에서 우리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어떤 추론적 사고도 개입시키지 않으며 존재 전체의 침묵 속에서 홀로 그분과 대화를 나눈다.”(「인간은 섬이 아니다」)

그리스도와의 침묵의 만남은 자신의 전(全) 존재를 바꾸어 놓는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말을 하지 않는다. 성령께서 그를 통해 말씀을 선포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침묵의 열매이다. 영적인 침묵은 다른 말로 영적인 친교(communion)이며, 기도의 깊은 일치 단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사랑하는 연인이나 어머니와 그 품에 안긴 아기 사이에 때때로 아무런 말이 필요없이 서로 교감을 이룰 수 있는 것처럼 하느님과의 깊은 영적 일치는 인간의 언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가령, 영성체 후 고요히 앉아서 아무 말을 하지 않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깊은 영적 친교 속에 있음을 체험하곤 한다. 언어를 넘어 침묵의 언어 속에서 사랑의 일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언어를 넘어가는 깊은 사랑의 일치가 복음 선포의 근간이 될 때 진정한 복음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머튼이 말하는 침묵은 세상의 부조리를 간과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침묵 가운데 하느님의 소리를 듣고 그분의 목소리가 되어 세상에 진리와 정의, 사랑과 자유를 외치는 참된 소리가 된다. 이런 의미에서 침묵은 자신의 말이 사라지고 그리스도의 말씀이 되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영적 덕목인 것이다. 머튼은 우리에게 주님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우리의 삶을 침묵으로 채워가야 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이 되기 위해 자신의 소리를 잃어버리길 가르쳐 주고 있다.

 

 

 

 

 
▲ 박재찬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부산 분도 명상의 집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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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05-13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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