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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붉은 죽이 커피였을까

[사유하는 커피] (5)야곱의 불콩죽과 인류 최초의 바리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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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장



주일학교 때 성경 말씀은 첫 영성체를 하기 위해 암송했던 사도신경처럼 일단 믿고 입으로 외는 대상이었다. 고교 사춘기쯤 의심이 생겼다. 어떻게 100만 명이 넘는 인파가 지나갈 때까지 바닷물이 갈라질 수 있으며, 하늘에서 이슬처럼 ‘만나’가 내린 것은 또 무슨 조화인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시고 열두 광주리나 남겼다는 것은 ‘가짜뉴스’처럼 보이기도 했다. 성경에 대한 의심들이 의혹으로 번져 “종교란 초자연적 존재를 찾으려는 인간의 인지 체계가 만들어낸 허상이자, 사회 통합을 위한 장치”라는 소위 인지종교학적 주장이 그럴싸하게 들릴 즈음 냉담이 시작됐다.

커피를 생계수단으로 삼으면서 성경 구절에 대해 호기심이 생겨났다.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면서 되레 성경에 호감이 생긴 것은 삶의 아이러니라 하겠다. 에사우가 허기에 지쳐 맏아들의 권리를 쌍둥이 동생 야곱에게 주고 불콩죽을 받아먹는 장면(창세 25,30)은 성경에서 손에 꼽히는 사건이다. 성당 밖의 사람들은 은유에 담긴 메시지를 새기기보다는 불콩죽의 정체를 따지느라 성경을 자주 들춘다. 1977년 「공동번역 성서」가 나오기 전까지 팥죽으로 알려졌던 야곱의 요리는 도대체 무슨 효능 때문에 에사우로 하여금 장자권을 팔기에까지 이르게 했던 것일까? 아무리 뒤져봐도 팥죽은 단백질과 비타민B가 풍부하다는 것 외에는 엄청난 효능이 있는 것도 아니다. 팥의 원산지가 아시아라는 이유로 성경의 붉은 죽은 지중해 연안이 산지인 불콩(렌틸콩)으로 바뀌었지만, 그 죽 역시 영양학적 가치는 비슷하다.

이런 정황 때문에 에사우의 비유는 눈앞의 이득만을 챙기는 데 급급해 하는 사람들이나 소중한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일깨우는 말씀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스위스 출신의 목사이자 작가인 에티엔 뒤몽(Etienne Dumont, 1759~1829)이 불콩죽은 커피일 수도 있다고 직관함으로써 새로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영국 철학자인 제러미 벤덤의 저술을 프랑스어로 번역-편집한 지식인으로서 정평이 나 있어 그의 ‘커피 발언’에는 큰 힘이 실렸다.

1922년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인 윌리엄 우커스가 저서 「올 어바웃 커피(All about coffee)」에 이 사실을 적시해 창세기 25장 야곱과 에사우의 이야기는 커피의 기원을 풀어줄 교과서적인 콘텐츠로 자리를 잡았다.

21세기에 들어서 커피가 일부 국가에서는 물보다 자주 마실 정도로 세계인의 음료로 부상하면서 야곱의 불콩죽이 커피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피 애호가들 사이에서 더욱 커지고 있다. 베넷 와인버그 박사와 보니 빌러 박사가 2001년 공저한 「카페인의 세계(the world of caffeine)」에는 야곱뿐 아니라 룻과 다윗의 시대까지 커피의 흔적을 찾아냄으로써 수많은 커피마니아를 성경 속으로 이끌어주었다.

에티오피아의 오로모족은 지금도 ‘부나 칼라(Buna Qalaa)’라고 해서 커피 열매를 말려 동물 기름과 섞어 죽처럼 끓여 먹는다. 커피의 긴 역사에서 초기 음용법은 야곱의 붉은 죽을 닮은 구석이 있다.

생각은 더 깊어진다. 야곱이란 이름이 ‘발꿈치를 잡다’라는 뜻으로, 형 에사우의 발뒤꿈치를 잡은 채로 태어나는 바람에 붙게 됐다는 사실은 또 다른 상상을 자극한다. 야곱이 탁월한 요리 솜씨를 지닌 것은 도구를 잡은 모양으로 태어날 때부터 예고됐던 것은 아닐까? 붉은 죽이 커피라면, 야곱은 다름 아닌 인류 최초의 바리스타이다. 3500여 년 전 쓰인 창세기에 21세기를 투영할 수 있다는 게 반갑다. 성경은 세상의 모든 것을 비춰내는 거울이다.



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단국대 커피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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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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