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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규 수녀의 사랑의 발걸음] 7. 사랑이 얼마나 넓은지 아는가

프랑스 성요한사도수녀회 장현규(마리스텔라)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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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수도 생활하는 중에도 나의 조국 한국의 소식은 큰 관심이고 늘 기쁨이다. 오늘은 환자들과의 만남 일화를 잠깐 접고, 6월 호국보훈의 달이고 하니 이산가족 상봉 이야기를 적고자 한다.

2015년 10월. 매일 적어도 두세 번씩은 인터넷을 통해 한국 소식을 접하곤 하는데, 당시 한국에서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남과 북의 헤어진 가족들의 만남. 타지에 사는 나의 마음도 고국 한반도에 가 있었다. 많은 가족이 만나는 그 감동과 진한 아픔을 보면서 눈물도 함께 훔쳤다. 어떠한 잘 만든 영화에서도 볼 수 없는 가슴 저린 만남. 그 한 장면 한 장면에 나의 온 마음이 집중되었다.

지금으로부터 꼭 70년 전인 1950년. 곱고 아름다웠던 그 시절, 부부는 결혼 7개월 만에 헤어졌다. 한국전쟁으로 남편은 21세 때 북으로 납치됐고, 아내는 임신 중이었다. 이들이 반세기가 훌쩍 넘은 세월 만에 눈물로 상봉했다.

많은 분이 이 노부부의 가슴 저린 만남을 기억하실 것이다. 생이별 뒤 노부부의 삶은 이랬다. 할머니는 시부모님과 남한에서 살면서 아들을 키웠다. 할머니는 매일 저녁 시아버지의 기침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 소리마저 비슷한 남편이 돌아온 착각을 느끼며 평생 살았다고 한다. 북으로 납치되어 홀연히 곁을 떠나버린 남편을 향한 애틋한 그리움을 어찌 견뎠을지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북으로 간 남편이 죽은 줄 알고, 할머니는 30년 넘게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지아비를 가슴에만 간직하며 살아온 여인의 강인한 정신과 사랑에 다시 한 번 코끝이 찡해졌다.

어린 핏덩이 아들을 업어 키우고, 게다가 시부모님까지 모시고 살아온 세월이 무려 70여 년. 10년마다 변하는 강산도 족히 7번은 바뀐 세월 동안 강은 땅이 되고, 땅은 밭이 되었다. 우리는 그 땅 위에 다시 씨를 뿌리고, 산은 길이 되어 차들이 씽씽 달리고 있다. 2~3년에 한 번씩 한국을 찾는 나에게도 한국의 변화는 엄청나다.

노부부는 90세가 다 된 모습으로 마주 앉았다. 아들은 혹여나 하는 마음에 얼굴도 뵌 적 없는 아버지와 만남에 함께해도 괜찮겠냐고 어머니께 물었다. 할머니는 즉시 “가족이 함께 있는 것이 정상”이라고 답하셨다. 그리고 70세가 다된 아들 부부가 난생처음 보는 아버지에게 큰절했다. 아름다웠다.

할머니는 백발의 남편에게 생전의 시아버지, 그러니까 남편 아버지의 회갑 사진을 꺼내 보였다. 늙은 아들은 사진 속 아버지를 이내 알아본다. 자신도 아들과 딸, 손자, 손녀 사진을 보여줬다. “이해하라”고 말하면서.

21세에 북으로 끌려가 결혼하고, 자녀들을 둔 것은 할머니 말대로 ‘정상’이다. 속절없는 세월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지만 어찌할쏘냐. 그럼에도 65년 만에 남편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얼굴에는 미소가 이어진다. 강산이 일곱 번 변하는 세월 속에 할머니는 정말 천사가 되신 것이다!

할머니가 할아버지께 말했다. “봐봐요. 사랑이란 두 글자가 얼마나 넓은 줄 알아요?” 할아버지는 말을 잇지 못했지만, 할머니는 그 오랜 세월 꺼내지 못했던 ‘사랑의 마음’을 전했다. 할머니는 아픈 세월을 딛고 남편을 만난 자리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지켜보는 모든 한국인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선포하신 것이다.

분단의 세월은 어느덧 75년. 그럼에도 여전히 할머니처럼 넓은 사랑을 지키는 분들이 많다. 고통 속에 핀 사랑은 헤아릴 수 없이 깊다. 사랑이 얼마나 넓은지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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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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