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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28)모자람의 영성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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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마리아 자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자신의 치유가 아니라 아이들의 심리 정서적 안정이었다. 자신은 문제가 없으니 아이들이 빨리 성격을 고쳐 안정되고 그것을 통해 자신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따라서 마리아 자매는 자신은 문제가 없고 괜찮으니 아이들이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모든 관심의 대상이 자신이 아닌 자녀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살아온 세월을 가늠케 해주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랑과 희생의 결과는 차디찬 자녀들의 냉소와 비난으로 돌아온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너무도 큰 사랑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마리아 자매에게는 지나친 사랑, 혹은 과도한 사랑이란 개념을 이해시킬 수가 없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모자라서 문제가 되는 것이지, 넘치는 것이 어찌 문제가 되겠는가? 마리아 자매에게 있어서 부모가 너무 간섭하고 잔소리한다는 아이들의 항변은 모두 사랑에 겨워서 호들갑 떠는 것에 불과했다.

마리아 자매는 자녀들이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실천해 왔던 것에 가장 큰 문제가 있었다. 아이들이 원하지 않아도 남들이 봐서 부러워할 옷이면 억지로라도 입혀 학교에 보냈다. 몸에 좋다는 약은 아이들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로라도 먹였으며, 누가 좋다고 하는 것이면 무조건 아이들에게 강요하였다. 이때 아이들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았다.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루카 11,11-12)는 말씀대로 실천하면서 모든 것은 다 아이들을 위한 사랑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사랑도 넘치면 분명 문제가 된다. 사실 엄밀히 말해서 넘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자기가 주고 싶다고 베푸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받고 싶은 것을 나누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기적 사랑 혹은 폭력적 사랑이란 말이 바로 여기서 생겨난다. 어떤 사람들은 부정적 의미를 지닌 이기심이나 폭력이 긍정적 의미를 지닌 사랑이란 단어와 합쳐지면 어떤 뜻을 가지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마리아 자매도 그랬다. 마리아 자매에게 사랑이란 무조건 좋은 것이었다. 따라서 ‘이기적 사랑’이란 말은 ‘나쁜 좋은 것’과 같은 표현처럼 이해할 수 없는 개념이었다. 이런 사람들은 ‘세속적인 영성’, ‘인간적인 신성함’, 혹은 ‘불완전함의 영성’ 같은 용어 역시 이해되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것은 심리영성적 건강과 성숙을 위해 무척 중요한 개념이다.

‘모자람의 영성’이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지나치거나 넘치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하면서 균형과 조화를 추구하는 삶의 태도를 의미한다. 이 영성은 완전함에 대한 강박을 벗어버리고 인간의 한계와 유한함을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한다. 이때 모자라는 부분은 자신이 아닌 하느님 혹은 이웃의 도움으로 채워질 수 있다.

마리아 자매는 심리적으로 완벽주의에 대한 강박이 있었다. 이것이 자식에 대한 사랑과 연결되어 완전한 사랑에 대한 강박을 낳게 되었다. 물론 이 완전함에 대한 의미도 요한 아버지의 경우에서처럼 이기심과 혼재되어 구별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문제는 바로 그 완전한(?) 사랑 때문에 오히려 자식들과 멀어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마리아 자매가 만일 자식들을 조금만 덜(?) 사랑했다면, 아마 그 여지만큼 자녀들이 그 사랑을 완벽하게 채워놓았을 것이다. 비록 자신은 충분한 사랑을 하지 못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자식은 어머니가 자신을 인격적으로 존중해주면서 온전한 희생과 사랑을 실천한 분으로 기억할 것이다.

김치를 담가주고 싶어도 자식이 원하지 않으면 그 사랑의 행위를 거두어들이는 용기가 바로 모자람의 영성이다. 손주에게 인스턴트 식품을 먹이는 며느리에게 한 마디 조언을 해주고 싶지만, 아내의 양육 방식에 충고하지 말아 달라는 아들의 부탁을 기꺼이 수용하는 마음이 모자람의 영성을 실천하는 것이다. 갑자기 유행가의 한 소절이 생각난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 어느 누가 쉽다고 했나~.”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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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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