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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 대성전 입구에서 모래시계를 들고 있는 해골

[엉클 죠의 바티칸 산책] (29)죽음과 삶의 유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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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베드로 대성전 미사에 참여하는 귀빈(VIP)들은 ‘기도의 문’을 통해 드나들게 되어 있다. 미사를 마치고 나갈 때면 통로 입구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모래시계를 들고 있는 해골로부터 인사를 받을 수밖에 없다. 오른쪽 아래 사진은 중앙의 하얀 실선 부분을 확대한 모래시계.



해골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혐오스러움? 경건함?

동양과 서양의 정서가 다른 것 같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비롯한 교황청의 귀빈(VIP)들은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미사를 마치고 나갈 때,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해골의 인사를 받게 됩니다. 이 해골은 VIP들에게 과연 무슨 인사말을 할까요. 그것이 궁금합니다. 해골의 머리가 여인의 치맛자락에 감춰져 있는 것 또한 흥미롭습니다.



흔히 볼 수 있는 해골

약간의 관심을 갖고 관찰하면 이탈리아의 성당이나 수도원 등에서 해골을 적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로마 한복판에는 유명한 해골박물관(해골 성당)이 있습니다. 봉쇄수도원인 카푸친 작은형제회 수도자들의 유골 천 개를 진열해 놓았는데, 정말 대단합니다.

‘소록도의 천사’로 기억되는 마리안느와 마가렛에 대한 전기 「소록도의 마리안느와 마가렛」(성기영, 예담)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두 분의 직업은 간호사였으나 사실상 수도자(수녀)로 살았습니다. 두 분 모두 한국에 오기 전 오스트리아에서 ‘그리스도 왕 시녀회’라는 평신도 재속회에 가입하여 종신서약을 했거든요. 마가렛은 한국에 와서 서울의 가르멜 여자수도원에 입회하기도 했습니다. 마가렛, 이 분이 한국에 올 때에 해골을 갖고 왔습니다. 24세의 젊은 아가씨가 해골을? 놀랍지 않습니까!

마가렛은 왜 만리타향 한국에서 해골을 모시고(?) 살았을까요. 전기의 관련 내용입니다. “중세 시대의 성인들이 종종 그랬듯이, 해골을 들여다보며 태양 아래 헛되고 헛된 삶과 모든 인간이 결코 피할 수 없는 종착역인 죽음에 대해 묵상하곤 했다.” 성 베드로 대성전의 해골은 진짜 해골이 아니고 이탈리아의 유명한 조각가 베르니니의 작품입니다.

바티칸에는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명소’가 꽤 많습니다. 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바티칸 당국의 허락을 받아 한국 순례자들에게 명소를 안내해 줍니다. 교황님이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미사를 집전할 때 출입하는 ‘기도의 문’이 그런 명소 가운데 한 곳입니다. 저는 순례자들에게 이 문을 ‘좁은 문’이라고 소개합니다. 세계 최대 성당의 규모에 비하여 출입문이 어울리지 않게 좁고 작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문을 갈 때마다 마태오 복음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 길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마태 7,13-14)

프랑스의 소설가 앙드레 지드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 준 소설이 바로 「좁은 문」입니다. 외사촌 누이 알리사를 사랑한 주인공 제롬이 이 복음 말씀을 듣고서 깊은 상념에 잠깁니다. “나는 모든 고행과 온갖 비애의 저 너머로, 또 다른 하나의 순수하고 신비스러우며 맑고 깨끗한 천사의 기쁨을, 내 영혼이 이미 목마르게 갈망하고 있는 그 기쁨을 상상하며 예감했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었지만 알리사의 금욕주의적 사랑과 제롬의 뜨거운 열정은 지금도 많은 사람을 감동케 합니다.

교황님만 기도의 문을 이용하는 게 아닙니다. 성탄절과 부활절 등 중요한 미사가 있을 때 특별히 초청되는 사람들도 이 문을 통하여 대성전에 입장합니다. 고위 사제(추기경, 주교), 국빈급 외교사절, 교황청 외교단 등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2018년 10월 교황청을 방문하여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사’에 참례할 때에도 이 문을 이용했습니다.



죽음을 기억하라

기도의 문은 폭 2m, 길이 10m의 좁은 통로입니다. 입구 문짝에 4개의 기도문(주님의 기도, 성모송, 즈카르야의 노래, 신경)이 새겨져 있습니다. 성당 내부에 들어서면 예수님과 알라코크 성녀가 순례자를 맞아줍니다. 성녀가 예수님의 성심 발현을 무릎 꿇고 맞이하는 거대한 모자이크 벽화입니다. 미사를 마친 뒤 돌아갈 때 통과하게 되는 출구에 모래시계를 든 해골이 있습니다. 모래시계는 삶의 유한성을, 해골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알렉산드로 7세 교황이 해골 위에서 무릎을 굽히고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통로가 좁은 관계로 미사를 마친 VIP들이 일시에 나갈 수 없습니다. 빠져나갈 순서를 기다리며 서 있는 VIP들에게 해골이 속삭입니다. “죽음을 기억하라( Memento Mori)!”



이백만(요셉, 주교황청 한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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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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