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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민 신부의 별별이야기](34)생각과 마음으로 짓는 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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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 자매는 상담하면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어렵게 털어놓았다. 보통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들이었다. 실로 그 인생이 얼마나 험난한 고난의 연속이었는지를 가늠케 해준 고백이었다.

우리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지 하느님 존재와 동일시될 수 없다. 원죄의 결과로 생겨난 인간의 죄에 대한 경향성은 인간의 본성 안에 깊이 내재되어 있다. 이 경향성을 세례의 은총과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바로 성덕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교회에서 공경하는 성인은 죄를 짓지 않았던 사람이 아니라, 죄 혹은 죄의 경향성이라는 인간적 한계를 통해 하느님의 은총으로 나아간 사람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 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살았다는 말은 자신의 삶의 목표가 영적 완벽주의에 기초한다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완벽주의는 결코 실현될 수 없지만 실현되어야만 하는 중요한 삶의 목표였다. 엠마 자매는 영적으로 자신이 완벽하다는 스스로의 평가에 위안을 받으며 현실의 그 어려운 고통을 버티어 낼 수 있었다. 남편의 냉대와 무관심, 그리고 자식들에 대한 배신감은 모두 거짓말을 하지 않는 진실한 삶을 통해 극복해 나갔다. 그때마다 자신을 이해해 줄 친구나 이웃에 대한 인간적 희망을 포기하고 오직 하느님은 알아주실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버텨냈다.

갑자기 하느님이냐 나 자신이냐, 혹은 이웃이냐 나 자신이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던 것은 바로 이러한 영적 충만감을 누린지 얼마 가지 않아서였다. 타인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살아온 것처럼, 이제 자기 생각 안에서도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아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그렇게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자신의 마음속 질문에서 자신보다는 하느님을 선택해야 한다는 신념은 자신의 인간적 약점으로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자신의 양심 안에서는 하느님과 이웃보다는 자신을 먼저 선택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이 사실은 거짓말로 합리화할 수 없었던 것이다. 현실에서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살았을 때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상상에서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더니 오히려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다. 진실하게 대답하니 하느님과 이웃을 배반하게 되거나 이웃을 나보다 더 사랑하지 못한 영적인 불완전성이 발생한 것이다. 거짓말을 하지 않아 영적으로 완벽하게 되고 싶은 엠마 자매는 오히려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 영적으로 불완전하게 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 것이다.

엠마 자매는 영적 지도를 받기 전에 심리치료가 우선으로 필요한 상황이었다. 자신의 성격적이며 대인 관계적 문제를 영적 완벽주의 안에서 해결하려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 중요했다. 하느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영성이 아니라 진실하게 살아가는 영성을 더 즐겨하신다는 생각의 전환도 필요했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진실한 삶과 항상 같은 의미가 아닐 수 있다는 사실도 이해해야 했다. 심리치료를 통해 엠마 자매는 자신이 거짓말을 하지 않고 진실만을 말했다는 것이 오히려 이웃에 대한 사랑의 의무를 거스르는 죄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성당의 한 자매에게 얼굴이 저팔계 같다고 직설적인 말을 했던 기억이 났던 것이다. 자신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했지만, 더 깊은 내면에는 그 자매를 공격하고 싶은 마음이 숨어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처럼 생각으로 죄를 짓게 만드는 망상이 자꾸 떠오르는 이유는 결과적으로 우리의 무의식이 뭔가 해결해야 할 내적인 문제가 있음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완벽주의를 벗어나 하느님과 이웃과의 건강한 심리영성적 관계를 회복하라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이다. ‘내 안의 또 다른 나’는 이처럼 이해할 수 없는 체험을 통해 하느님과 이웃을 진정으로 만날 수 있도록 나를 초대하고 있다.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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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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