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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규 수녀의 사랑의 발걸음] 23. 나의 눈길을 조용히 끄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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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시골에서 며칠 지냈다. 이곳에서 산책하는 중에 외따로 떨어져 있는 어느 낡은 집 앞을 지나게 됐다. 벽 아래, 돌로 된 울타리, 그리고 그 안에서 붉은색, 흰색 꽃들이 밝게 핀 것을 보았다.

그러나 나의 눈길을 조용히 끄는 꽃은 따로 있었다. 울타리 밖 작은 돌길을 뚫고, 싹이 돋아 난 작은 꽃이었다. 초록색 줄기에서 연보라색 꽃이 피기까지. 이 이름없는 들꽃은 사랑스럽고 나의 마음을 순수하게 해 주는 듯했다.

다시 성당. 아침 묵상 때 들꽃이 떠올랐다. 그 위에 예수님 말씀이 겹쳤다. “너희는 왜 옷 걱정을 하느냐?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마태 6,28)

울타리 안의 화려한 꽃들은 주인이 뿌려주는 물을 마시며 자란다. 잡풀들도 뽑아주는 주인의 보살핌 안에 한껏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그러나 들꽃은 행인들의 받지 못하면서 거친 땅을 억세게 뚫고 올라와 하느님만이 내려주시는 비와 햇빛을 받는다. 그렇게 들꽃들은 꿋꿋하게 아름다운 꽃까지 탄생시키며 가난한 자신의 자리를 끝까지 지킨다.

우리 수도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머나먼 아프리카에서, 아시아의 필리핀과 한국에서 날라온 씨앗들이 프랑스 씨앗들과 어울려 싹이 트고, 꽃으로 피어났다. 나는 우리 수도원을 소박하고도 어여쁜 화단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우리 수도자들은 모두 제각각의 개성과 모양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서로가 잘 자라나도록 돕고 산다. 울타리 밖에 외로이 피어있는 들꽃들과도 함께한다. 작은 들꽃들이 더 아름답게 피어나기 위해서는 울타리를 헐어버리면 더 힘 있는 공동체가 될 것이다.

‘흙’은 어머니의 가슴과도 같은 부드러운 자양분. 그 흙이 안겨주는 습기와 영양분을 받으면서 들꽃들은 굵직하고도 강인해질 것이며, 들에 핀 백합꽃처럼 세상에 향기를 뿜어낼 수 있을 것이 아닌가.

향기로움에 관하여 한마디 더 쓰고 싶다. 우리 수도원이 운영하는 양로원에 자주 오셔서 미사를 주례해주시는 원로 신부님이 계신다. 어느 날 신부님께서는 강론을 통해 진복팔단의 ‘온유함’의 덕행에 관해 말씀해 주셨다. 신부님은 덕행이야말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드러나 덕이라고 말씀하셨다.

맞다. 우리는 모두 들꽃이다. 더욱 작고 아름다운 들꽃들이 모인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예수님의 향기를 뿜어낼 수 있는 은총은 바로 십자가를 통해서이다. 그 향기로움으로 울타리도 헐어 버릴 수 있고, 홀로 피어 있는 들꽃과 손을 맞잡을 수도 있다. 전 세계의 들꽃들은 그렇게 온유한 덕을 나누면서 함께 춤추고 싶을 때 서로 같은 동작으로 발을 구르고, 하느님을 향해 한 곡조 띄우고 싶을 때엔 찬미와 찬송의 노래로 주님께 영광을 드릴 것이다. 시편의 작가는 하느님의 집을 향해 아름답게 노래한다.

“이는 길이길이 내 안식처 내가 이를 원하였으니 나 여기에서 지내리라. 그 양식에 내가 풍성히 복을 내려 그 불쌍한 이들을 빵으로 배불리리라. 그 사제들을 내가 구원으로 옷 입히리니 그 충실한 이들이 춤추며 환호하리라. 그곳에서 내가 다윗에게 뿔이 돋게 하고 나의 기름부음받은이에게 등불을 갖추어 주리라. 그의 원수들은 내가 수치로 옷 입히지만 그의 머리 위에는 왕관이 빛나리라.”(시편 132,14-18)

프랑스 성요한 사도 수녀회 장현규(마리스텔라)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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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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