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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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민 신부의 별별이야기] (51) 부모와 어른이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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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되었지만 아직 아이 같은 모습을 보이는 사람을 흔히 ‘어른이’라고 부른다. 안타깝게도 이런 미성숙한 성인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충분히 성숙한 성인으로 살아가도 어른이로 보이는 경우가 있다. 사랑이 넘치는(?) 부모의 눈에는 다 큰 자식도 항상 걱정되고 불안한 어른이일 뿐이다.

부모는 어른이를 걱정하는 마음에 사랑과 관심의 표현(?)을 아끼지 않는다. “얘야, 운전 조심하고 다녀라” “손주 손녀들 인스턴트 음식 먹이지 마라!” “이번 대림절에는 꼭 판공성사를 보고 영성체해라!” 등의 말을 한 번도 듣지 못한 자녀들은 없을 것이다.

이런 관심은 자녀의 가정생활과 사회생활 전반에 쏟아진다. 다 큰 자녀들은 부모의 노파심을 사랑의 표현으로 알아들으면서도 은근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리고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 분에 잔소리로 들리기 시작할 때 쌓아왔던 분노를 터뜨린다. 이때 부모는 자식을 걱정하고 염려하는 마음을 몰라주는 자식에게 마음의 큰 상처를 받게 된다. 자식 역시 부모의 과도한 사랑을 정서적 폭력으로 느끼며 저항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힘들어한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코헬 3장).” 성인이 된 자녀에게는 청소년기와 다른 형태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부모의 관심과 사랑도 때와 시기에 맞추어 그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는 지혜의 말씀일 수 있다. 어린 시절에 신었던 꼬까신이 아무리 예뻐도 다 큰 성인에게 신길 수는 없는 법이다. 성인이 된 자녀들은 꼬까신이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새로운 고무신을 요청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포유류에 속한 동물들은 새끼가 젖을 뗄 때까지 대략 3년을 함께 지낸다. 아주 일부의 포유류만 새끼가 출산할 수 있는 때까지 기다린 후에 독립을 시킨다. 하지만 영장류인 인간만이 부모가 독립해야 할 자녀와 함께 살아간다. 설사 결혼을 통해 원가족과 물리적으로 독립했어도 새로운 가족관계 안에서 부모와의 인연이 시작된다. 이러한 이유로 인간사회의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세대 갈등이 발생하게 된다.

성인기에 접어든 자녀의 뇌 안에서는 독립을 위한 준비를 하게 된다. 부모에게서 독립해도 좋다는 신호 혹은 메시지를 기다리는 것이다. ‘독립해도 좋다는 신호(sign)’, 이것이 성인기에 접어든 자녀들이 부모에게 유일하게 요청하는 ‘새로운 고무신’이다. 자연에서는 새끼가 독립하는 것이 아니라 어미가 새끼를 밖으로 내몰아 독립시킨다. 마찬가지로 인간도 부모가 독립시켜주기를 무의식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부모가 그 신호를 보내지 않으면 자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부모에게 독립의 신호를 요구한다. 청소년기 부모에 대한 반항심은 바로 독립이 가까워져 왔다는 생물학적 반응의 일부다. 자녀가 부모에게 독립을 청하는 메시지는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며 대개 부모와 자식 간의 다양한 갈등을 통해 드러난다.

원시 부족사회에서는 자녀가 온전한 성인이 되었다는 독립의 신호를 개인적인 방식이 아닌 공동체적인 방식으로 확인해 주었다. 바로 성인식이다. 불구덩이를 걷고, 신체 일부를 훼손하며,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면서 신체적 고통과 심리적 공포를 이겨낸 아이들은 자신이 성인이 되었다는 자의식을 강하게 각인시킨다. 온전한 성인이 되었다는 자의식을 지닌 아이들의 뇌는 더 이상 독립의 신호를 요청하지 않는다. 성인식은 성인기 아이들의 생물학적 독립의 욕구를 충족시켜 부모와의 갈등을 공동체적으로 해결하는 중요한 갈등 해소 예식이었다.

현대 문명사회의 자녀들 역시 자신들을 온전히 성인으로 인정해 주는 그 어떤 것을 요청하고 있다. 부족국가의 성인식처럼 공동체 예식은 아닐지라도 부모가 자녀에게 ‘새로운 고무신’을 신겨줄 수 있다면 부모와 자녀의 갈등은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다. 독립해야 할 어른이지만 독립할 수 없어 어른이로 상처받고 있는 자녀들에게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자 사랑의 표현인 ‘새로운 고무신’은 과연 무엇일까? <계속>



<영성심리학자, 성 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0-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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