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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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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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대부분의 문제는 우리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에 따라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타인의 삶에 지나치게 집중할 때 그 시선은 때론 위험천만한 비교로 이어지게 되며, 무분별한 분노, 상대적 열패감과 공허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한국사회 안에 만연한, 타인을 의식하고 긍정적 평판과 소문을 성공과 출세의 지름길로 여기는 분위기는, 기득권의 편의를 포장하는 위선과 윤리적 타락을 양산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세대를 거듭하여 재생산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모순이며 악순환이 아닐까 합니다. 타인의 삶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더욱 정직하고 겸허하게 집중할 때 인간의 삶은 더 많은 의미와 기쁨으로 충만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누구의 감시나 무례한 검열에도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삶을 빛나게 살아갈 길은 무엇인지를 ‘숨겨진 보물’과 ‘값진 진주’의 비유를 통해 알려줍니다.


■ 복음의 맥락

이번 주에도 ‘하느님 나라’가 소개됩니다. 지난주 복음은 ‘밀과 가라지’, ‘누룩’, ‘겨자씨’ 등을 통해 하느님 나라의 특징을 묘사하였다면 이번 주에는 하느님 나라를 찾고 발견한 인간이 개별적으로 취하는 행동에 주목합니다. 고대사회에서는, 주변 국가들의 잦은 침입과 이방인의 강탈로 인해, 그리고 개인의 자산을 맡기고 관리할 은행이나 금융기관이 없었기에 자신의 보물을 땅에 묻어두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였고 숨겨 놓았던 보물은 의외의 시간에 의외의 사람에 의해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러한 사회적 맥락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 숨겨져 있지만 그 무엇보다도 좋은

복음의 본문에서 하느님 나라는 “숨겨진 보물”과 “좋은 진주”에 비유되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사게 한다는 것’입니다.(마태 13,44-45) 자기 인생을 전부 걸 정도로 귀한 하느님 나라는 ‘좋은’ 것이지만 ‘숨겨져’있다는 특성을 가집니다. “숨겨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크륍토’의 과거 분사형이며, 오래 전 누군가에 의해 감춰지거나 봉인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좋은”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형용사는 ‘칼로스’로서, 아름다운, 선한, 유익한 등의 뜻을 가지며, 감히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하느님 나라는 ‘발견하고’, ‘찾는’ 행위를 통해 구현되는데 밭에서 일하다가 보물을 발견한 일꾼처럼 예기치 않게, 느닷없이 발견할 수도 있고, 간절한 희망으로 좋은 진주를 찾아다니던 상인처럼 항구한 찾음을 통해 발견되기도 합니다.

‘모든 것을 다 팔’ 정도로 소중한 ‘하느님 나라’의 가장 고유한 본질은 당연히 ‘하느님이 거처하시는 곳’이라는 점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이 계시는 곳’, ‘하느님과 더욱 가까이에 있게 되는 곳’이며, 이는 하느님 자신이야말로 숨겨진 보물이고 값진 진주의 실체임을 암시합니다. 그분은 언제나 우리 존재 가장 깊은 곳에 계시는, 즉 우리 마음의 밭에 숨겨져 있는 보물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숨겨진 보물이 있는 밭과 좋은 진주를 파는 상점은 그 어떤 다른 곳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 그 ‘중심’이고, 그렇게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을 발견하는 것이 하느님 나라를 획득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귀영화나 권력보다 제대로 된 ‘마음’을 갈망하고 이를 하느님께 청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지혜의 대왕 솔로몬입니다.


■ 듣는 마음과 완덕의 여정

제1독서는 솔로몬의 지혜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알려줍니다. 솔로몬은 꿈에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2열왕 3,5)라는 하느님의 질문을 받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높은 지위에 있다하더라도 지혜가 없으면 모든 것은 위태롭고 허술한 스펙이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획득되는 ‘지식’과 달리 ‘지혜’는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주어지는 선물이며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알고 있던 솔로몬은 백성을 분별 있게 통치할 “듣는 마음”을 청합니다.(9절) “듣는 마음”의 히브리어는 ‘레브 쇼메아’이며, ‘샤마’(듣다)라는 동사와 ‘레브’(마음)라는 명사가 연결되어 있는 ‘연계형’입니다. 유다인들에게 ‘레브’는 생물학적 기관으로서의 ‘심장’을 의미하지만 무엇보다 인간의 내면, 모든 생각과 지성·의지가 조정되는 중심을 지칭했습니다. ‘샤마’는 무엇을 듣는 행위와 그 들음을 통해 동반되는 순종과 주의 깊은 수용까지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듣는 마음’은 주의 깊은 경청과 이를 통한 전인적 소통을 말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찾고 발견하기 위해 인간이 걸어야 할 삶의 여정은 때로는 불행과 역경, 고난을 포함하기도 하는데 제2독서에서 바오로는 이 모든 것이 선한 결과를 내기 위한 필수적 순간들임을 역설합니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로마 8,28) 하느님 나라를 위한 고난은 어느 것도 무용한 시간으로 폐기되지 않는 것입니다.

‘용기’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 courage는 라틴어 cor(심장, 마음)에서 기원하며, 이는 전적으로 ‘마음’을 다하고 그렇게 다한 ‘내면의 양심’을 견고하게 지킬 때 우리 각자는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세상을 움직이고 개인의 삶을 존엄하게 지켜주는 가장 강력한 힘은 외부 조건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서 나오는 것이며, 이것이 궁극적 행복의 비밀인 것입니다. 소문과 세상의 평판에 급급해 그 비위를 맞추며 자기 삶을 만들어 가다보면, 고유하고 명료한 내면의 힘은 빈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 집단에 속한 이들조차 주체적 자아는 결핍되고 부재한 채 사회를 이끌어가는 불안을 조성하게 됩니다. 사회적 약자들(여성, 아동, 장애인 등)이 감수해야 할 공포와 수치심, 착취와 학대, 그로인한 절규가 넘쳐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우리 각자에게 질문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2열왕 3,5) 단순하고 순진한 마음으로만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도 숙명적인, 우리 실존 전체를 거는 처절하고도 신중하며 단도직입적인 물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혜윤 수녀 (미리내성모성심수녀회 총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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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07-21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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