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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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가장 작은 형제를 사랑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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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력으로 마지막 주일인 오늘은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왕(마태 28,18)이시고,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이끄시는 ‘착한 목자’(요한 10,11)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양 떼입니다.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순례길에 함께하는 가장 작은 형제들에게 우리는 사랑의 디딤돌이 되는 기쁨을 누립니다.

또한 금주는 성서주간입니다. 성서는 진리를 가르치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라틴어 성경(Vulgata)의 저자인 예로니모 성인은 “성서를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네 복음서의 중심에 계십니다. 주님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을 경청하여 마음의 등불을 밝히고, 말씀의 씨앗을 나누면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기원전 6세기 예언자인 에제키엘은 주님께서 목자처럼 당신의 양 떼를 찾아 돌보시고 양과 염소 사이의 시비를 가리신다고 전합니다(제1독서). 잃어버린 양을 찾아내고 흩어진 양을 불러 모으며, 부러진 양은 싸매주고 아픈 양은 원기를 돋우십니다. 기름지고 힘센 양은 없애고 어린 양들을 골고루 먹이십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정에서 최초로 기른 동물은 양과 염소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유목 생활을 해 왔기에 양의 성별과 나이에 따라 구분하는 히브리어가 많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인도로 약속의 땅을 찾아왔고,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40년간 광야 생활을 했습니다. 침묵 중에 고통을 견디는 양들에 감명을 받고 사람을 양에 비유합니다.

양의 특성을 알면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화답송, 시편 23편).”라고 하느님께 대한 절대적 신뢰를 드러내 찬미합니다. 양은 초식성 동물로 되새김질을 합니다. 두 눈의 시야가 좁아 떼 지어 다니고, 방향감각이 없어 흩어지기 쉽습니다. 성질은 온순하나 고집이 세면서도 겁이 많습니다. 몸의 70가 물인 양은 샘물을 찾습니다. 푸른 풀밭에서 쉬게 하고, 목마르면 물가로 이끌어 새 생기를 돋우어주며 바른길로 이끌어주시는 주님이 계시기에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한들 어찌 두렵겠습니까?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께서는 우주 차원에서 역사의 시작이요 마침이시고, ‘모든 것 안에 모든 것’이 되실 창조의 힘과 생명의 주인이심을 밝힙니다.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첫 인간 아담은 흙에서 와 흙으로 돌아갔는데, 그를 통해 죄와 죽음이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새 아담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납니다.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께서 영광에 싸여 천사와 함께 재림하실 때 죽은 이들의 부활 순서를 들려줍니다. 첫째는 죽은 이들의 맏물이신 그리스도이시고, 다음은 그분께 속한 이들이며, 마지막은 종말입니다. 종말에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것을 굴복시켜 ‘새 하늘 새 땅’을 성부께 넘겨 드리는 역사의 심판자이십니다.

오늘의 복음은 마태오에 나오는 독특한 담화로 그리스도의 재림(Parousia)과 최후의 심판에 관한 내용입니다. 마지막 날에 ‘사람의 아들’(마태 25,31; 요한 3,15)께서는 옥좌에 앉으시어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당신 오른쪽에 양들을, 왼쪽에 염소들을 세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의인과 악인을 양과 염소로 비유하십니다. 양은 침묵 중에 고통을 참는 사랑의 표지이고, 염소는 절제하지 않는 선정적 동물이기에 수치의 표지입니다.

주님께서는 굶주린, 목마른, 집 없는, 헐벗은, 병든, 그리고 옥살이하는 가장 작은 이들을 ‘내 형제’라고 하시며,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말씀하십니다. 악조건에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주님을 섬기듯 가장 작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심판의 기준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께서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변함없는 사랑과 영원한 생명을 위해 활동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양들을 돌보시고, 그들을 위하여 당신 목숨을 바치신 ‘참된 목자’이십니다. 교회는 양우리이며 그리스도께서는 그 유일한 문이십니다(요한 10,9; 14,6).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문을 지키는 이는 베드로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입니다.

오늘날 물질문명과 가치혼돈의 시대에 많은 이들이 이기와 탐욕, 고통과 불안, 불의와 분열 속에 흔들리는 삶을 삽니다. 코로나바이러스19 감염위기로 비대면의 수난을 겪고 있습니다. 하느님만을 믿고 살기엔 불안한 사람들은 재물, 권력, 명예, 인맥, 집착 등을 위안으로 삼는 것일까요? 알고 보면 이 모두가 우상인데 말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작은 형제들에게 자선과 기부와 시간을 많이 보냅니까? 말과 행동만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은 어디에 둡니까? 깨어 기도하는 가운데 사랑의 계명을 따릅니다. 주님의 축복을 받은 자녀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삶의 중심은 미사입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생명의 양식과 구원의 음료로 마련된 성찬에 감사드립니다. 하느님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고,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청합니다.




김창선(요한 세례자) 가톨릭영성독서지도사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0-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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