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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에 처음입니다만] (26) 가톨릭에서는 제사를 지내나요

가정 제례, 전통문화 존중 차원에서 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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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에 고향을 두고온 실향민들이 경기도 파주 참회와 속죄의 성당에서 차례상을 차려놓고 조상들을 위한 한가위 차례를 올리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나처음 : 성당에 갔더니 주보에 한가위 날 미사 뒤 합동 차례를 지낸다는 안내문이 적혀 있어 깜짝 놀랐습니다. 조상 제사를 지내는 건 우상 숭배가 아닌가요.



조언해 : 저도 가끔 제사 문제로 고민할 때가 많아요. 많은 신앙 선조들이 박해시대 제사 때문에 순교했는데 지금은 제사를 지내도 된다니. 그러면 그 많은 순교자의 죽음은 헛된 게 되나요.



라파엘 신부 : 명절이 다가오니 제사 문제에 관심이 많나 보구나. 결론부터 말하면 가톨릭교회는 제사를 허용하지만 권장하지는 않아. 따라서 가톨릭 신자들이 의무적으로 제사를 지낼 필요는 없어. 오히려 기일이나 명절 등 조상들을 기억해야 할 때에는 가정 제사보다 ‘죽은 이를 위한 미사’를 봉헌할 것을 권한단다. 다만 여러 필요 때문에 기일 제사나 명절 차례를 지내야 하는 가정은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마련한 ‘가정 제례 예식’에 따라 제례를 지낼 것을 권하고 있지.

교회가 신자들에게 기일과 명절에 제사보다 미사를 권하는 근본 이유가 있단다. 그것은 미사와 제사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야. 제사가 자기 조상을 기억하고 돌아가신 분을 위로하는 행위라면 미사는 교회가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의 제사란다. 하느님께서 창조와 구원 사업을 통해 모든 인간에게 주신 은총에 감사하고 찬미를 드리는 것이지. 또 제사는 단순히 돌아가신 분을 기억할 뿐이지만 미사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재현하며, 이를 기념해 우리의 삶에 적용하는 것이란다. 아울러 조상들에게 드리는 음식이 죽은 조상의 현존을 의미하지 않지만 미사 때 축성된 성체와 성혈 안에 주님께서 항상 실제로 현존하고 계신단다. 그래서 교회는 가정 제사를 지내기보다 인간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느님께 드리는 본질적인 제사인 미사에 참여할 것을 권하는 거야.

가톨릭 신자가 제사를 지낼 때 반드시 지켜야 할 게 있어. 교회는 위패를 모실 때 ‘신주’(神主)나 ‘신위’(神位)라고 쓰거나 혼령을 불러들이는 축문을 읽는 것을 금해. 자칫 이러한 행동이 우상 숭배로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이야. 이외에 제사상에 음식을 차려놓거나 십자가와 죽은 이의 사진을 모셔놓고 향을 피우고 절을 하는 것은 허용해. 이처럼 교회가 허용하는 제사는 유교식 제례나 미신 요소가 다분한 민간신앙 풍습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야. 조상의 영혼을 귀신으로 이해해 복을 빌거나 재앙을 쫓는 수단으로 여기면 절대 안 돼.

한국 교회의 ‘가정 제례 예식’은 시작 예식→말씀 예식→추모 예절→마침 예식으로 구성돼 있어. 추모 예절은 분향과 절,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바치는 기도 등으로 진행된단다. 신자들을 위해 성당에서 합동 차례를 지낼 때는 반드시 미사 전후에 해야 해. 교회의 공식 전례와 비전례 의식이 섞이지 않아야 하지. 부득이하게 신자들의 조상 이름을 게시해야 할 경우는 제대나 차례상 앞이 아닌 제대 주변에 미사 지향을 알리는 차원에서 게시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단다.

가톨릭교회에서 제사 문제가 처음 불거진 것은 16세기 중국에서였지. 당시 중국에서 선교하던 예수회는 제사를 조상에 대한 효성을 드러내는 풍속으로 여겼지만, 프란치스코회와 도미니코회는 미신으로 봤지. 이러한 선교사들의 견해 차이는 100여 년간 계속된 제사 논쟁으로 이어졌고, 1715년 클레멘스 11세 교황과 1742년 베네딕토 14세 교황은 제사를 미신 행위로 여겨 엄하게 금지했어.

제사를 금하는 교황청 입장이 바뀌는 데는 200년의 세월이 필요했단다. 1939년 비오 12세 교황은 「중국 의식에 관한 훈령」을 통해 제사가 미신이나 우상숭배가 아닌 문화의 풍속이라고 인정하며 제사를 허용했단다. 한국 교회도 이 훈령에 따라 제사를 인정한 것이지.

이처럼 가톨릭교회가 허용하는 제사는 유교식 조상 제례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조상에 대한 효성과 추모라는 전통문화를 잇는 차원에서 그리스도교적으로 재해석한 예식이라고 이해해야 해. 따라서 제사를 조상 숭배 개념으로 오해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단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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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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