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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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영성 이야기] (37) 사랑 받는 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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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예수님 수난에 대해 관상 기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예수께서 빌라도에게 심문받으실 때 군중들이 예수를 향해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다. 그런데 그 군중들은 얼마 전까지 예수님을 따르며 환호하던 바로 그 사람들이었다. 예수님에게 복음도 듣고 위로와 치유를 받은 사람들인데, 지금은 예수를 죽이라고 핏대 세워 외치고 있었다. 어쩌면 저럴 수 있을까? 군중 속에 있던 나는 그들의 배신에 억울하고 분노가 느껴져 눈물이 났다.

결국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매달리셨다. 그리고 고통 중에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바라보시면서 너희를 사랑한다고, 너희를 용서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시더니 똑같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용서하신다고 하셨다. 그 순간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이전까지 분노와 슬픔 때문에 흘렀던 눈물이 멈췄다. 나도 용서하신다니, 그럼 나도 저들과 똑같이 죄인이라는 말인가.

그동안 나는 하느님 앞에 스스로 죄인이라는 생각을 별로 해본 적이 없었다. 절대 죄인이고 싶지 않았다. 잘 산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어도 이 정도면 그런대로 괜찮지 않나. 아울러 용서라는 것은 내가 아닌, 세상의 다른 나쁜 사람들에게나 필요한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그 관상 기도를 통해 죄라는 것에 대해 더 묵상하게 되었다. 하느님 앞에 죄라는 것이 무엇일까? 도둑질이나 살인 같은 것만이 죄일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사랑하지 않는 것이 죄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느님 사랑을 외면하거나 감사하지 않는 것, 그분께 받은 사랑을 나누지 않고 무관심한 것, 내 기준으로 세상을 판단하고 단죄하는 것 등 모두가 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내가 얼마나 세상에 무심하고, 내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는가가 느껴졌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 관심하시기보다 그것을 통해 우리와 대화하기를 바라신다는 것도 마음으로 다가왔다. 사랑을 살지 못한 우리가 당신 앞에 자신을 정직히 개방하고, 당신의 사랑을 통해 깊게 회심하며, 다시금 사랑을 살려고 애써 가길 바라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부모의 사랑 안에서 아이가 실수를 하면서도 부모와 일상을 나누며 성장해 가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하느님과 이런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사랑받는 죄인’이기 때문이다. ‘죄’ 때문에 미움받고 단죄받는 것이 아니라, 죄와 관계없이 우리는 깊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하느님의 사랑을 외면하거나 거부하고, 서로를 미워하는 죄인이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런 우리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않으시고, 다시 사랑으로 나아가도록 초대하신다. 하느님이 위대하신 건 다른 전지전능한 능력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런 사랑을 하시기 때문인 것 같다.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는 존재이지만, 여전히 우리는 사랑을 살기 어려운 존재들이다. 문제는 우리가 그런 존재라고 해서 스스로 단죄하거나 하느님을 더 외면하고 숨는 경우를 적지 않게 보게 된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잘 살아야만 하느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접근하다 보면 우리와 하느님의 관계는 더욱 줄어들고 형식적이 된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마음을 다해 우리를 기다리시는데도 말이다.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본질은 죄를 짓지 않는 것에 있다기보다, 우리 자신을 그분께 정직하게 나누고 그분과 대화해 가는 데 있다. 죄를 지었더라도 하느님 사랑 안에서 회심하고 다시 나아가면 된다. 어쩌면 우리 인생 여정은 그런 사이클의 연속이다. 그런 여정을 통해 죄인을 사랑하시는 그분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깨닫고 닮는 것이 그분이 진정 바라시는 것이 아닐까.

사랑을 살기 어려운, 악하면서 약한 존재인 우리. 그런 자신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 깊이 감사하면서 그 사랑을 조금이라도 닮아 가도록 애쓰자.


한준 (요셉·한국CLC 교육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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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09-15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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