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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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아는 만큼 보인다] 95. 마지막 정화 - 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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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가 성경에서 근거를 찾을 수 없다며 인정하지 않는 가톨릭 교리 중에 ‘연옥 교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이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이 밖에도 많이 있다. 그래서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하면, 온 세상이라도 그렇게 기록된 책들을 다 담아 내지 못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요한 21,25)라고 하듯, 성경에 모든 가르침이 꼭 다 들어있어야만 한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연옥 교리가 없다면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도 많이 감소합니다. 연옥은 실제로 이 세상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대통령을 만나 식사하는 자리에 갔는데 갑자기 바지가 찢어져 엉덩이가 다 보이는 상황이 되었다면 그 상태로 대통령을 만나는 기쁨을 똑같이 누릴 수 있을까요? 대통령을 만나는 기쁨을 잠시 미뤄두고 바지를 기워입고 다시 나타나는 것이 현명할 것입니다. 이것이 ‘연옥’이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완전히 정화되지 않은 사람들은 영원한 구원이 보장되기는 하지만, 하늘의 기쁨으로 들어가기에 필요한 거룩함을 얻으려면 죽은 다음에 정화를 거쳐야 합니다.”(1030) 하느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마태 12,20 참조) 아직 나비로 태어나지 못한 누에고치가 있다면 나비로 탄생할 때까지 기다려주실 것입니다. 아직 다 구워지지 않은 도자기가 있다면 다 구워질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성경에도 연옥에 관한 근거가 되는 내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마태 12,32)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내세에서도 용서받는 시간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마카베오 장군은 작은 우상을 지니고 다니다 전사한 병사들의 죄 사함을 위해 하느님께 제물을 바칩니다.(2마카 12,41-45 참조) 그리고 “그가 죽은 이들을 위하여 속죄를 한 것은 그들이 죄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었다”(2마카 12,45)라고 합니다.

죽은 이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참으로 훌륭한 일입니다. 연옥의 고통은 지옥의 그것에 뒤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리서는 이 세상에서 “완전히 정화되지 않은 사람들”이 내세에서 주어지는 “정화하는 불”(1031)을 거친다고 말합니다. 성 치릴로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괴로움을 한데 합친 것보다 연옥의 아주 미소한 괴로움이 더 혹독합니다”라고 했고, 성 아우구스티노는 “연옥에서 일순간 받는 고통은 석쇠 위에서 순교한 성 라우렌시오의 고통보다 더 무섭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죽으면 더는 믿음의 공로가 없으므로 그저 순수한 불의 고통만으로 부족한 면을 보완해야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교리를 믿는다면 연옥 영혼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 없고, 자신 또한 이 세상에서 완덕으로 나아가는데 게으를 수 없습니다. 이 지상에서 병의 고통을 피하지 않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면서, 무시무시한 연옥의 고통을 앞에 두고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연옥 교리를 온전히 믿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연옥도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옥의 정화가 이 세상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여겨야 합니다. 그래야 이 세상에서 최대한 자기를 정화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연옥을 아예 견진의 과정이라고 보면 좋을 것입니다. 세례 이후에 견진이 바로 시작됩니다. 아기가 자신이 사람임을 믿게 되는 것이 세례라 한다면, 그 믿음에 합당하게 옹알이를 하여 말을 연습하고 걸음마를 하여 부모처럼 되기 위해 고생하는 과정이 견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홍해를 건너는 것이 세례라면 광야에서 정화되는 시간이 견진일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여러분이 지금 얼마 동안은 갖가지 시련을 겪으며 슬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1베드 1,6)라고 말하며 계속 겪어내야 할 고통을 암시합니다. 세례받은 이들은 “믿음의 순수성”을 드러내기 위해 이 세상에서부터 “불로 단련”(1베드 1,7) 받는 것입니다. 이 견진의 과정에서 겪는 고통이 충분하지 못하다면 연옥에서 불로 단련을 또 받아야 합니다. 도자기가 한번은 구워져야 완성되듯 이 세상에서나 저 세상에서나 한 번은 불로 단련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연옥을 거치기보다는 바로 천국으로 가기 위해 이 지상에서 완전한 정화에 이르려는 노력이 더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고통을 안다면 연옥 영혼을 위해 자주 기억하고 기도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전삼용 신부 (수원교구 죽산성지 전담 겸 영성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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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11-17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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