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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영성 이야기] (46) 우리 가운데 계신 감독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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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월, 호남 지역 포콜라레운동 공동체가 마리아폴리를 개최했다. ‘마리아폴리’란 포콜라레운동 초창기부터 며칠간 공동체가 함께 모여 이탈리아의 마을에서 휴가를 보냈는데 그곳이 바로 성모님께서 다스리시는 도시라는 뜻으로 부르게 된 이름이다. 전 세계에서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거의 해마다 열렸다. 아쉽게도 올해는 코로나19 상황으로 대면 모임이 모두 취소된 탓에 열릴 수가 없었으나, 그나마 유튜브를 이용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런데 마지막 출연진 자막과 함께 소개된 감독 이름 자막에 ‘우리 가운데 계신 예수님’이라고 적혀 있었다. 빙긋 웃음이 나오는 한편 그럴 수 있겠다고 수긍이 갔다. 처음으로 갖는 형식일 뿐 아니라, 준비 과정에서 일어났을 여러 시행착오들을 떠올려봐도 그런 결과물을 도출하기까지 서로 참고 배려하고 살아 냈을 인내와 사랑의 순간들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 한 사람의 아이디어나 연기력과 기술 덕분이 아니라 그들 서로 간의 사랑, 곧 그들이 함께 모신 예수님께서 감독 역할을 하셨음이 분명하리라.

2004년 이탈리아의 사소네라는 곳에서 열린 한 모임에 참석했는데 당시 포콜라레운동의 창설자인 끼아라 루빅은 공식 석상에 나올 수 없을 만큼 건강이 좋지 않았다. 그래선지 그해 주제인 ‘우리 가운데 계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더욱 강하게 와 닿았다. 끼아라가 유언처럼, 자신이 땅 위에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을 때라도 이 운동을 예수님께서 계속 이끌어 가시도록 서로 사랑 안에서 일치하여 그분께서 계시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한 때문이었다.

‘우리 가운데 계시는 예수님’이라는 표현은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20)에 근거한다. 우리가 그분의 이름으로 모인다는 것은 그분의 새 계명,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를 실천한다는 뜻이기에 서로 목숨을 줄 정도로 사랑해야 함을 뜻하므로, 끼아라와 첫 친구들은 전쟁 중에 서로를 보며 그렇게 약속했다고 한다. “나는 너를 위해 죽을 수 있어!”

당시 사소네에는 전 세계에서 많은 이가 모였는데 한국에서 간 우리 일행은 네 명이었고 통역을 통해 그 담화를 들은 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함께 모여 우리도 우리말로 그 서약을 되풀이하자고 하였다. “나는 너를 위해 죽을 수 있어!” 마음이 뜨거워졌으니 마치 성령께서 우리 영혼에 불을 지펴 주신 듯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다시금 사랑할 수 있는 힘이 돼줬다.

몇 년 후 어떤 번역 작업에 동참하게 되었는데, 한 사람은 이탈리아에 있었고 두 사람은 우리나라에 있었기 때문에 시차로 밤낮이 다른 상황이었다. 어려움 중에도 우리는 메일이나 에스엔에스(SNS)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작업을 진행했다.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적절한 하나의 낱말을 찾기 위해 때로는 끝없이 의견을 나누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 낱말이 떠오르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제시하곤 했다. 누군가에게는 낮 시간이었으므로. 하지만 작업을 끝내기까지 한 번도 마음 상한 적이 없었고, 어쩌다 알맞은 낱말을 찾았을 때는 하나같이 기뻐하였다. 바로 한마음이었다! 그 일을 마쳤을 때 우리는 우리가 아니라 바로 우리 가운데 계신 예수님께서 이루신 일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 우리 모두 색다른 기쁨을 느꼈고, 그 기쁨이 바로 그분께서 우리 사이에 계셨음을 확인해 주는 인장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이 시대에도 그분께서 우리 가운데에 계신다는 사실, 그 감독님께서 우리의 손을 빌려 일하시게 해 드리는 것보다 더 대단한 일이 어디 또 있을까!




장정애 (마리아고레띠·마리아 사업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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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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