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
생명/생활/문화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이지혜 기자의 엄마일기](22)훌쩍 큰 아이들, 친구들과 티격태격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재작년 이맘때 4살 큰 아이는 종종 코딱지를 파먹었다. “지성아, 너 어린이집에서도 코딱지 파먹어?”

고개를 절레절레한다. 그럼 왜 집에서만 파먹느냐고 물었다. “집에서는 선생님이 안 보잖아. 근데 어제는 어린이집에서 먹었어.”

“언제 먹었냐”고 물으니 “잘 때”란다. 그러고선 낄낄 웃는다. “너 잘 때 옆에 누가 자?” 서준이라고 하길래, “그럼 서준이가 코딱지 파먹는 거 봤겠네!” 했더니, 갑자기 검지와 엄지를 모아 침을 바르더니 내게 꿀밤을 날린다.



“넌 나랑만 친구해야 돼”

코딱지가 화두였던 시절을 지나 지성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질투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몇 달 전 주일학교 아이들과 성지순례를 다녀왔는데, 지성이가 한 친구에게 집착하는 모습을 봤다. 같이 놀던 석호가 우진이랑 놀기 시작하자, 지성이는 석호에게 옅은 미소를 지으며 “너, 나랑 친구 안 할 건가 보네” 하며 눈을 흘겼다. 지성이는 점점 표정이 어두워졌다. 갑자기 유치원 단짝인 서우가 지성이를 보고 반갑게 달려왔는데 지성이는 뚱한 표정이었다. 갸우뚱한 서우는 지성이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지성아, 우리 친구잖아!” 그런데 지성이가 이렇게 대꾸했다. “나는 석호랑 친구야.”

아이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엿들으며 난데없이 아침 드라마가 생각났다. 아이들은 작고 사랑스러워 이런 대화조차 귀여웠지만, 서로의 존재를 집착하거나 무시하고, 편을 가르는 모습은 마음을 착잡하게 했다. 중학생 시절, 자신의 단짝 친구와 싸우고 내게 전화를 걸어 “내일부터 나랑 점심도 같이 먹고, 화장실도 꼭 같이 가 주어야 한다”며 전화로 훌쩍인 현진이가 생각났다.

기저귀와 배냇저고리를 벗어버리고, 기어 다니다가 걸음마를 내딛더니 이제는 자유로운 보행의 단계까지 도달했다. 훌쩍 큰 아이들은 이제 사회적 관계에 눈을 떴다. 손발이 편해져 다 키웠다 싶었는데…. 아이들이 다툴 때 중재를 하면, “얘가 나를 먼저 때렸고, 때린 이유는 얘가 먼저 나를 속상하게 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이어지는 논리들은 엉킨 실타래 같다. 어떤 실의 끄트머리를 잡고 풀어야 하는지는 삶의 가치관과 맞물려 있어 가르쳐주기가 늘 조심스럽다.



어릴 적 교복 주머니의 묵주

아이와의 시시콜콜한 에피소드를 잘 알고 있는 여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언니, 우리가 어렸을 때 친구랑 다퉈서 외로우면 엄마는 ‘예수님한테 친구 해달라’고 기도하라고 했잖아. 그걸 지성이한테 알려줘. 난 엄마가 그렇게 말해준 게 힘이 되었거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엉킨 관계의 실타래를 풀어나갈 때 신앙이 있다면, 그보다 귀한 중심이 어디 있을까 싶었다. 교복 주머니에 들어가 있던 작은 1단 나무 묵주가 생각났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9-12-04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3. 29

시편 72장 7절
주님 나라에 정의가 꽃피게 하소서. 큰 평화가 영원히 꽃피게 하소서.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