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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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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기자의 엄마일기] 달콤한 성탄 파티… 맨밥을 먹는 수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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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며 케이크에 초를 꽂았다. 촛불을 끄고 싶은 두 아이가 쏜살같이 달려와 식탁에 모였다.

“누구 생일인지 아는 사람?” 지성이는 당당하게 자기 생일이라 하고, 말 못하는 둘째도 손으로 가슴을 치며 자기 생일이라고 한다.

“오늘은 예수님 생일이야”라고 알려주자, 지성이가 너스레를 떤다. “그럼 이 케이크를 예수님만 먹어? 나는 못 먹어? 예수님이 어떻게 이걸 혼자 다 먹어?”

생일 축하 노래의 빈칸에 예수님을 넣어 불렀다. 어쨌든 우리는 입안이 달콤한 성탄 파티를 보냈다.

TV에서는 경북 상주 산곡산 자락의 카르투시오회 봉쇄 수도원을 담은 다큐가 나오고 있었다. 얼마 전, 대구에 있는 까말돌리수도원에서 극기와 절제의 삶을 경험한 기억이 났다. 카르투시오 수도자들이 떠먹는 밥에 시선이 고정됐다. 지성이가 말했다. “엄마, 저분은 왜 반찬이 없어? 슬퍼 보여.”

카메라는 맨밥에 바나나를 비며 먹는 수사님을 비췄다. 맑은 얼굴의 수사는 말했다. “맨밥에 바나나를 비벼 먹으니, 바나나에서 짠맛이 난다. 그런데 내가 바나나에 의지하고 있다는 걸 알았고, 그 이후론 바나나를 함께 먹지 않는다.” 수도원에서 먹었던 가난한 밥상이 떠올랐다. 짜고 맵고 달달한, 세상의 자극적인 맛은 찾으려야 찾을 수 없었던 그런 밥상이었다.

수도자들의 양말 뒤꿈치는 닳았고, 신발은 낡아서 몇 번을 실로 꿰맸다. 세상의 재물을 자유롭게 포기한 수도자들의 삶은 우리가 오늘 보낸 성탄절, 이 하루만 봐도 너무 달랐다. 우리는 와인을 열었고, 축배의 잔을 들었다.

엄마로 살아가는 일이 힘에 부닥치는 때는 ‘차라리 수도원’이라는 말풍선을 마음에 띄웠다. 봉쇄 수도자의 삶이 더 쉬어 보였을까. 나는 엄마이기에 아이들을 위해 고기도 굽고, 옷도 사고, 기도도 하고, 빨래도 해야 한다.

구내염을 심하게 앓고 있는 서진이가 입안이 아파 밤잠을 설쳤다. 효능은 딱히 없지만, 입안에 숨을 “호~ 호~” 하고 불어넣어 줬다. 입안으로 공기가 들어오는 게 재미있는지 깔깔거리며 입으로 공기를 모아 내게 되돌려준다.

수도원에서 수녀님이 해주신 이야기가 떠올랐다. 갓 입회한 수녀가 모든 것을 묻고, 알려야 하는 수도원 규율에 답답해 하며 이렇게 말했단다. “1분 동안 숨을 몇 초 쉬어야 하는지도 물어야 하나요?” 그러자, 장상 수녀가 이렇게 답했다. “숨은 네가 쉬는 게 아니다. 숨은 하느님이 쉬신다. 너는 입만 벌리고 있으면 된다.”

입만 벌리고 있으면 숨을 쉬게 해주시는 하느님, 그분의 숨결이 서진이의 따뜻한 입김이 되어 부족한 엄마로 살아가는 내 얼굴을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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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01-02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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