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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 예술인] (23) 김준성 요셉 (화가)

잉크 통해 스며드는 하느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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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염(靜染)’.

사전에선 찾을 수 없는 낯선 단어다. ‘조용히, 고요하게 번지다’ 정도로 해석된다.

이러한 뜻의 정염을 주제로 일관되게 작품활동을 펼쳐온 화가가 있다. 10년 넘게 일본에서 활동하며 공부하고 있는 김준성(요셉, 41)씨다. 2009년 도쿄 타마미술대(多摩美術大)를 졸업한 김씨는 현재 교토시립예술대(京都市立芸術大) 대학원 미술연구과에서 박사 학위 취득을 앞두고 있다. 미술사를 전공하며 뒤늦게 작품 활동을 하게 됐다.

“미술사를 공부하다 보면 자연히 그림을 많이 접하게 되지요. 그림을 연구하면서 어떻게 왜 그림이 그려졌는지 궁금증이 생겼어요. 글자로만 그림을 이해하기보단 직접 그리고 싶어졌지요. 좋은 논문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직접 그려보지 않은 연구는 반쪽짜리 연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 전시된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2015)는 김씨의 대표작 중 하나다. 2015년 사제품을 받은 작은형제회 김진열(가롤로) 신부의 상본 이미지로 제작했다. 작품명은 김 신부의 수품성구다. ‘사랑이 없으면…’은 빨간색과 초록색, 보라색의 잉크가 다미아노 십자가 형상으로 번져 있는 독특한 작품이다. 빨강은 희생과 부활과 사랑을, 초록은 생명을, 보라는 왕(예수님)의 색깔을 의미한다. 다미아노 십자가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허물어져가는 교회를 다시 일으켜 세워라’는 말씀을 들은 다미아노 성당에 걸려 있던 십자가다.

그는 만년필과 잉크로 작품을 제작한다. 0.1㎜가량의 차이를 두고 셀 수 없이 많은 선을 긋고, 여기에 물을 더해 잉크가 물에 번져 퍼져 나가는 모양이 작품의 이미지다. 잉크가 물에 실려 종이에 번지는 모양은 누구도 알 수 없다. 잉크와 물의 온도, 종이 재질에 따라 번지는 모양새가 달라진다. 김씨는 “완성될 모양은 아마 하느님만 아실 것”이라고 했다.

그는 초등학생 시절 아버지가 외국에서 사온 어린이용 만년필을 선물해준 것을 계기로 만년필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공업계 고교 건축과에서 로트링펜을 잡고 선을 그리는 연습을 하며 건축 도면을 그려본 경험이 현재 김씨만의 독특한 기법의 밑거름이 됐다. 잉크 특성상 그의 작품은 시간이 흐를수록 색이 변하고 흐려지기도 한다.

이에 대해 그는 “예술 작품 중에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작품 또한 하나의 생명체이며, 노화 과정을 어느 정도 늦출 수는 있겠지만 영원불멸한 존재로 만들 수는 없다고 본다. 영원불멸한 존재는 하느님뿐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신앙과도 떼려야 뗄 수 없다. 막상 닥쳤을 때는 몰랐지만 돌이켜보면 주님께서 그를 위해 마련해 두신 것 같은 경험이 반복되면서다. 그는 2011년 박사 과정에 지원했으나 불합격하고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를 겪으며 예정에 없던 귀국을 했다. 귀국 후 시작한 것은 청년 성서모임이었다.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시작한 성경 공부 덕분에 많은 청년을 만나게 됐다. 그해 첫 개인전도 열었다.

성경 공부와 작품활동을 계기로 2013년부턴 3년간 ‘창조의 시간’이라는 이름의 청년 미술모임을 만들어 함께 성경 공부를 하던 이들과 성경 구절을 주제로 그림을 그려 전시회도 개최했다.

김씨는 “성경 공부와 봉사를 통해 ‘야훼 이레’를 체험했다”며 “개인적 한계와 물리적 상황 때문에 귀국한 게 아니라 주님께서 저를 위해 미리 준비해놓으셨음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그는 청소년과 청년을 자녀로 둔 부모들에게 “야간 공고를 졸업한 제가 박사가 될 줄은 누가 알았겠느냐”며 “자녀들에게 ‘공부하라’고 하기보단 자녀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잘 관찰해서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힘 기자 lensman@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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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8-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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