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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바람 불던 댄스홀 ‘성소 못자리’로 만든 사제의 비밀

프라도 사제회 설립한 슈브리에 신부의 삶과 영성 담은 책 두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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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브리에 신부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사제’를 키우고자 프라도 사제회를 설립했고 예수 그리스도의 모상인 사제가 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했다.





슈브리에 신부의 비밀

올리비에 드 베랑제 지음 / 프라도 사제회 옮김 / 가톨릭출판사 / 1만 5000원




“사제의 직무는 평화를 주는 것입니다. 제 육신도 영혼도 온전히 여러분의 것입니다. 저는 전적으로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쓰이기 위해 여기 있습니다.”(복자 앙트완느 슈브리에 신부)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의 영성’을 몸소 실천한 사제. 구유(가난)ㆍ십자가(죽음)ㆍ감실(생명)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성령의 이끄심에 순응한 사제. 프라도 사제회를 설립한 복자 앙트완느 슈브리에 신부(1826~1879)다.

‘사제는 제2의 그리스도’라는 사명을 몸소 실천하며 살았던 복자 앙트완느 슈브리에 신부의 생애와 영성을 엮은 「슈브리에 신부의 비밀」이 나왔다. 고(故) 올리비에 드 베랑제(오영진) 주교가 쓴 저서를 한국 프라도 사제회가 새로 번역해 내놓은 개정판으로, 예수님의 가난을 본받아 덕행을 실천했던 슈브리에 신부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

슈브리에 신부는 ‘실천하는 사제’였다. 그는 열심히 살아가는 도시 노동자들을 사랑했고, 청소년을 비롯한 본당 신자들을 열성적으로 하느님께 인도했다. 슈브리에 신부는 부탁이 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환자들을 방문해 성사를 줬고, 치료비조차 마련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자선단체를 만들어 도왔다. 신자들의 어려움을 늘 헤아리고, 즉시 그들 곁으로 달려갔던 슈브리에 신부는 그래서 노동자들보다 안락한 생활을 하는 사제들을 묵인할 수 없었고, 본당 일을 말로만 하는 사제들의 태도에 비판적이었다.

슈브리에 신부는 1856년 프랑스 라기요티에르 지역에 물난리가 나자 성당 문을 활짝 열어 수재민들을 모두 맞아들이고 직접 구조활동에도 나섰다. 이 같은 한 사제의 헌신적 노력은 당시 언론에도 보도됐다.

같은 해 12월 성탄 밤 슈브리에 신부는 구유 앞에서 묵상하다 ‘강생의 신비’를 깊이 깨닫고, 가난의 삶을 다짐한다. 자신은 작고 가난해지는 가운데 영혼들에 헌신하고,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기로 하게 된 것이다. 이후 슈브리에 신부는 “본당에 좋은 사제들이 있어야 한다”는 일념 아래 ‘좋은 사제’로서 양들을 돌보는 데 더욱 전력을 다한다.

일터의 젊은 여성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러 작업장을 직접 방문하고, 자신의 강론에 대한 질문이나 반박을 모아 다음 강론 때 답변해주곤 했다. 그의 가슴엔 분명한 ‘사제상’이 깊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의 생애를 연구하는 것이 내 연구의 전부가 될 것이다. 예수님을 본받는 것이 내가 원하는 전부이며, 내 모든 생각의 유일한 목표이고, 내 모든 행동의 목적이다. 사제는 이 지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완전한 모상이어야 한다. 그래서 사제가 되기를 바라지 말고, 먼저 하느님을 따르는 일을 해야 한다.”

그는 리옹 변두리에 있는 프라도의 댄스홀을 인수해 성당에서 제대로 교리를 배우지 못한 아이들을 데려다 의식주를 해결하면서 글을 가르치고, 첫영성체를 준비시켰다. 이후 그 댄스홀은 ‘가난한 이들의 복음화’를 위한 사제 양성소가 된다. 이 같은 슈브리에 신부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사제’를 키우고자 한 성소 정신은 1860년 ‘프라도 사제회’ 설립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프라도 재속 사제회 소속 신부는 전 세계 1300여 명에 이르며, 한국에는 1975년 한국 프라도 사제회가 설립된 이후 160여 명이 각 교구에서 △복음 연구 △사도적 성찰 △형제적 생활로 구성된 ‘프라도 정신’으로 살고 있다.







슈브리에 신부의 그리스도론

이브 뮈세 지음 / 한국 프라도 사제회 옮김/ 가톨릭대학교출판부 / 2만 7000원


참다운 사제가 되고자 애썼던 앙트완느 슈브리에 신부는 그럼에도 어떠한 신학, 그리스도론과 관련한 책이나 영적 면담 시리즈를 집필하진 않았다. 그는 오직 신앙의 길을 걷고자 하는 협력자들과 함께 가난한 이들의 복음화에 투신했고, 스스로를 예수 그리스도의 도구로 삼았다.

「슈브리에 신부의 그리스도론」은 ‘가난을 실천한 사제’의 영성을 이론적으로 전개한 도서다. 빈곤과 가난, 사회적으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서민들의 자녀를 위해 활동했던 ‘슈브리에 신부의 정신’을 여러 일화와 일련의 사건, 강론과 편지 내용을 중심으로 자세히 들여다봤다.

슈브리에 신부의 첫 번째 삶의 규칙은 ‘예수 그리스도 연구’였다. 예수 그리스도가 겪은 십자가 죽음과 성찬의 삶 속에서 조명하고 연구하는 작업, 이를 실천하는 것이 그의 삶이었다. 그는 매일 15분씩 성체조배하는 것을 책으로 배우는 교리보다 중요한 일로 삼았다.

“주님은 특별히 우리 각자와 결합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은 마치 먹는 양식이 우리 몸과 이루는 결합처럼 가장 내밀한 결합에 의한 것이기에 그 결과 이 일이 우리 안에서 마치 새로운 강생처럼 이루어집니다.”(성 안드레아 본당 미사 강론에서)

책은 이처럼 슈브리에 신부의 강론에 녹아 있는 그리스도 관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슈브리에 신부는 “어머니의 빵이 아이들에게 먹일 젖이 되듯 천사들의 양식은 곧 우리 모두의 빵이 되고, 미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영광의 고통을 보여주는 연극”이라며 늘 성사의 신비를 강조했다.

슈브리에 신부는 저서 「참다운 제자」를 통해 “가난한 사람들을 본받을 것, 가난한 사람처럼 살 것, 일, 소유, 봉사, 정신과 마음에 있어서 성인들처럼 가난할 것” 등 예수님 방식대로 가난한 이들의 삶에 맞추도록 요청한다.

“제2의 그리스도가 되기 위해서는 작아져야 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낮은 사람, 곧 모든 이들의 종이 되어야 하고, 사랑을 통해 다른 이들의 노예가 되며, 겸손을 통해 모든 이들 중 제일 아랫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기억하기 바랍니다.”

슈브리에 신부의 삶과 이념은 오늘날에도 생생한 울림을 준다. 희생과 사랑, 가난과 겸손을 실천하는 사람은 결국 이 세상 가장 보잘것없는 이가 되는 게 아니라, 가장 큰 예수님을 닮게 되기 때문이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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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8-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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